방송국은 ‘정의’를 말하지만···오요안나들은 울고 있다

2025-02-02

방송계 고질적 병폐 ‘꼼수 간접고용’ 관행

괴롭힘 대응 어려워···방송국만 웃는다

직장인 5명 중 1명 ‘가짜 프리랜서’ 경험

지난해 9월 숨진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방송국들의 ‘꼼수 간접고용’ 관행이 다시 비판을 받고 있다. 프리랜서 등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등 노동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였는데, 방송국들이 꼼수 계약으로 노동법상 책임을 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 캐스터는 2021년 MBC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했다. 오 캐스터는 지난해 9월15일 세상을 떠났고, 숨진 지 4개월이 흐른 지난달 오 캐스터가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는 유서를 남긴 것이 알려졌다.

프리랜서 등 간접고용 노동자는 사용자나 원청의 괴롭힘에 대응하기 어렵다. 괴롭힘 금지법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받으려면 사용주의 지휘·통제를 받는 등 실질적인 ‘근로자’로 일했다는 것이 소송 등으로 증명돼야 한다.

방송사들은 꼼수 계약을 악용하며 ‘근로자’ 고용에 따르는 여러 법적 책임을 피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22년 발표한 ‘방송사 비정규직 근로여건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2021년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사 인력 중 9199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이들 중 32.1%가 프리랜서, 19.2%가 파견직, 15.3%가 용역업체 등 간접고용 노동자였다. 그해 지상파 신규 채용 방송제작인력의 64.1%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방송 비정규직 노동단체 ‘엔딩크레딧’은 성명에서 “방송사의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 주체는 비정규직들이고, 이들 대부분은 방송사의 지휘 감독을 받으며 직원처럼 일하는 ‘무늬만 프리랜서’들”이라며 “하지만 방송사들은 ‘프리랜서이니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고용 책임이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방치하고 있다”고 했다. 괴롭힘 금지법은 물론 4대보험, 서면 계약서 등 의무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괴롭힘 문제제기 직후 MBC의 대응도 무책임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MBC는 지난달 31일 “일부 기사에서 언급한 대로 고인이 사망 전 관계자 4명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다면, 그 관계자가 누구인지 알려주기 바란다”며 “무슨 기회라도 잡은 듯 이 문제를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유족 요청 등이 없더라도 조사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 등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MBC는 뒤늦게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오 캐스터의 유족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기상캐스터는 사고를 당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배달노동자와 같다”며 “MBC는 기상캐스터들이 방송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서로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살아남는 구조를 만들어 노동자를 소모시켰다. MBC는 약자의 권리를 옹호한다고 말하지만 내부에선 강자가 살아남는 노동 구조를 유지했다”고 했다.

꼼수 프리랜서 계약 관행은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일 공개한 설문조사를 보면, 직장인 17.9%가 지휘·명령을 받으면서도 프리랜서 계약을 하는 ‘불법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있었다. 직장갑질119는 “MBC는 근로계약 체결 여부와 무관하게 오 캐스터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며 “MBC는 필수적인 업무를 하는 기상팀 아나운서들과 노동자들을 프리랜서가 아닌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했다.

MBC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보호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안법 5조는 특수고용직(특고) 노동자로부터 노무제공을 받는 사업주가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같은 법 77조는 사업주가 특고 노동자 산재 예방을 위해 안전보건조치를 해야 한다고 정한다. 지난해 5월 대법원은 건국대 골프장에서 일하던 특고 캐디가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며 숨진 사건에서 이 조항을 근거로 건국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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