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옆 101층 411m 건물. 국내 최고층 아파트인 엘시티(85층, 333m)와 같은 복합단지에 들어서 있다. 아파트를 내려다보는 이 건물은 숙박시설이다. 8~19층 호텔(시그니엘부산), 22~94층 생활숙박시설(이하 생숙, 엘시티레지던스)이다. 생숙은 호텔과 달리 주방 등을 갖춰 거주가 가능하다. 발코니도 설치돼 구조가 아파트와 같다.
생숙 위탁운영업체의 예약 사이트를 조회해 보니 다음 달 주말 90층 전용 205㎡에서 하룻밤 묵는 비용이 150만원이 넘는다.
같은 크기의 다른 실에서 전세나 월세로 살 수도 있다. 비슷한 층의 같은 크기 임대 호가가 전세 30억원, 보증금 2억원·월세 1200만원이다.
그런데 공공연한 임대는 불법이다. 숙박시설을 전세·월세 또는 자가 등 주거용으로 쓰면 불법 용도변경에 해당한다.
정부, 19만 '생숙' 주거용 합법화 지원
오피스텔 용도변경 3대 규제 완화
복도 폭·주차장 해결에 비용 들기도
주거 억제 지구단위계획 변경 '난제'
하지만 어설픈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2019년 말 준공 이후부터 주택처럼 써왔지만, 규제를 받지 않았다. 해운대구청에 따르면 현재 전체 561실 중 309실만 숙박업 신고를 했고 나머지 252실은 불법 용도로 쓰고 있는 셈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 생숙 12만8000실 중 40%인 5만2000실이 숙박업 신고를 하지 않고 현재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사 중인 6만실도 상당수가 주거용으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생숙 40%가 숙박업 미신고
생숙을 합법적인 주거용으로 쓸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규제 완화와 단속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정부가 용도변경 문턱을 대폭 낮추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6일 ‘생숙 합법사용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숙박용이 아닌 주거용으로 사용하려는 소유자를 위해 오피스텔 용도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이다. 건축물 분류에서 기준이 매우 엄격한 최상위의 주택으로 용도 변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업무시설로 분류되지만, 주택처럼 쓸 수 있는 '준주택'인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하게 하는 것이다.
권대중 서강대 교수는 "정부가 생숙의 오피스텔 용도변경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선 데는 소유자들의 거센 반발만이 아니라 주택공급 부족도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오피스텔 용도변경의 3대 걸림돌을 제거하기로 했다. 복도 폭, 주차장, 지구단위계획(도시관리계획의 일종)이다. 복도 폭 기준이 생숙 1.5m 이상, 오피스텔 1.8m 이상이다. 복도 폭을 넓히려면 사실상 건물을 다시 지어야 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생숙 절반 정도가 복도 폭이 1.5m다. 준공 후 5만2000실 중 2만5000실, 공사 중인 6만실 중 2만6000실에 해당한다. 정부는 16일 이전 건축허가를 신청한 생숙은 복도 폭이 1.8m 미만이더라도 피난시설·방화시설을 보강하면 용도변경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복도 폭 규제 완화의 관건이 국회다. 법 개정 사안이어서다. 정부는 주거용에 필요한 안전성능을 충족하면 1.8m 미만도 인정하는 건축법 개정안을 올해 안에 발의하기로 했다. 안전성능 설계에 비용이 다소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300실 미만은 실당 100만원, 300실 이상 30만원 정도다.
3000만원씩 들여 인근 주차장 부지 마련
현행 주차장 기준이 생숙 시설면적 200㎡당 1대와 오피스텔 실당 1대다. 생숙 실당 면적이 대개 200㎡ 이하여서 생숙 주차대수가 적다. 주차장 추가 확보도 국회까지 갈 필요 없이 인근에 주차장 부지를 확보하거나 지자체에서 규제를 완화하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전남 여수시 웅천지구에서 2020년 준공한 포레나여수웅천디아일랜드는 인근에 2000㎡ 부지를 확보해 221대 주차공간을 마련한 뒤 지난 7월 대부분 실이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했다. 웅천자이더스위트는 주차장 부지 구입에 실당 평균 3000만원을 들였다.
지자체가 조례를 개정해 주차장 요건을 완화할 수 있다. 경기도 안양시가 부설주차장 설치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제주시는 주차대수 등 기준을 낮췄다. 안양시 관양동 평촌푸르지오센트럴파크는 85대 주차장이 부족한데도 지난 4월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해 준공할 수 있었다.
복도 폭·주차장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지구단위계획의 건축물 허용 용도에 오피스텔이 포함돼 있지 않으면 용도 변경할 수 없다. 정부는 건물 등을 공공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기부채납을 통해 지구단위계획 변경도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구단위계획 변경은 도시계획에 손을 대는 거여서 논란이 많다.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되면 상시 거주 인구가 늘어 기반시설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해운대 엘시티 일대 지구단위계획은 오피스텔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해운대구청 관계자는 “관광 활성화를 위해 공동주택은 40%만 짓고 나머지 60%를 숙박·판매시설 등으로 계획했는데 현재 40%를 차지하는 생숙을 오피스텔로 바꾸면 주거가 80%여서 당초 관광특구 개발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지구에 들어선 생숙들도 오피스텔을 허용하지 않는 별내택지지구단위계획에 가로막혀 용도변경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주민들이 주민제안 방식으로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같은 지역에서 엇갈리는 용도변경 희비
같은 지역에서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오피스텔 용도변경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인천 송도에서다. 2017년 준공한 오네스타는 오피스텔을 허용한 인천테크노파크 확대조성단지에 속해 지난해 용도변경을 했다. 반면 송도 내 국제업무단지는 오피스텔을 거의 허용하지 않아 송도랜드마크푸르지오시티·송도한라웨스턴파크·송도스테이에디션 등이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하지 못했다.
부산 해운대에서도 우동 지구단위계획은 오피스텔을 허용해 에이치스위트해운대 생숙 대부분이 용도 변경했다.
그렇다고 지구단위계획 변경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지난 8월 준공한 롯데캐슬르웨스트는 200억원 상당의 상업시설을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지구단위계획의 건축물 불허용도에 들어있던 ‘업무시설 중 오피스텔’을 삭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