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장 순수하고 안성기답다"…35살 얼굴이 영정사진 된 이유

2026-01-06

배우 안성기의 빈소가 마련된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조문객들을 맞는 영정사진은 커피 광고 속 친숙한 모습도, 만년의 주름진 미소도 아니었다. 1987년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 포스터를 위해 사진가 구본창(73)이 촬영한 청춘의 말간 미소였다. “모든 사진이 존재의 증명”이라던 롤랑 바르트까지 떠올리지 않아도 '이제는 이 미소가 세상에 없구나' 부재를 실감하게 만드는 흑백 사진이다.

5일 오후와 6일 오전 이틀간 기자의 전화를 받은 구본창은 "지난 2일 부인 오소영 씨의 요청으로 사진을 준비했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 때 사진이 가장 순수하고 안성기다운 얼굴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1월 1일 다음 날인 징검다리 연휴라, 문 연 액자 집을 찾아 급히 만들었다. 그러고도 며칠이 지나서 ‘회복되셨나보다’ 안도했는데, 빈소에서 보게 되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정사진을 정리하면서 ‘이제 저 눈빛 다시 볼 수 없게 됐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구본창이 한 살 위 안성기를 처음 만난 것은 독일 유학 중이던 1982년, 스물 아홉살 때였다. 서울고ㆍ연세대 경영학과 동기 배창호 감독이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 촬영장에 초대했을 때다. “촬영장은 지금은 없는 동대문 서울운동장 근처였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찍었다. 무명의 학생 사진가가 유명 배우의 편안한 순간에 허락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 싫어하진 않을까 내심 두려웠지만 안성기는 스스럼없이 대해줬다”고 돌아봤다. 당시 구본창의 사진 속 안성기는 ‘한국의 제임스 딘’이라 할 반항의 얼굴, 그마저도 눈빛만큼은 선량했다.

그에 비하면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 포스터 사진은 첫사랑의 모습이다. 구본창은 그해 귀국해 배창호 감독의 이 영화 포스터를 제작했다. “스튜디오도 없던 시절이라 연세대 교정으로 안성기ㆍ황신혜 배우를 데려갔다. 때론 찍히는 이에게 ‘애인 보듯이 바라봐 주세요’ 말할 때가 있다. 배우가 본인의 속마음을 보여준 그 순간,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안성기도, 나도 최선을 다해 마음을 연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같은 해 강수연ㆍ박중훈 주연의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촬영도 하면서 태흥영화사와 인연을 맺게 된 구본창은 이후 ‘꿈’(1990)의 승려 조신, ‘태백산맥’(1994)의 김범우, ‘축제’(1996)의 상주로 분한 안성기와 함께했다. 구본창이 안성기와 함께 한 마지막 작품은 ‘종이꽃’(2020) 속 장의사. 그는 “안성기는 변치 않는 순수함의 얼굴, 악한이 될 수 없는 얼굴”이라고 말했다.

2022년 배우 강수연이 세상을 떠났을 때 오래도록 사람들의 뇌리에 남은 영정 사진도 구본창의 것이었다. “동생이 ‘고인이 가장 좋아했던 사진’이라며 패션지 ‘바자’ 화보 때 붉은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찾았다. 그때의 사진은 옆모습이라, 정면을 찍은 B컷을 사용했다”고 돌아봤다. 38세 강수연의 화보 사진도, 35세 안성기의 포스터 사진도, 마지막 순간 빛나는 작별인사가 됐다. “이번에 영정사진을 고르면서, ‘나는 어느 시절의 어떤 사진으로 남게 될까’ 생각했다”는 사진가의 말은,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모두에게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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