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승계, 富 세습 아닌 산업지속성 위한 발판"

2025-12-09

“한국 사회에서는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지만 가업승계는 재산 이전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과 책임을 다음 세대에 넘기는 것입니다.”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 소장은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산업화를 이끈 1세대 가족기업들이 지금 세대교체 시기를 맞았지만 승계 성공률은 약 30%에 그치고 있다”며 “축적된 지식·경험의 공백, 지배구조의 불안정, 가족 간 신뢰 붕괴가 복합적으로 얽혀 기업 생존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20여 년간 가족기업 승계 현장에서 활동해온 김 소장은 2012년 국내 최초로 가업승계 연구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줄곧 가족기업 승계 연구와 컨설팅, 경영자 교육, 후계자 육성 프로그램 개발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박사학위 취득 이전 재무설계사로 활동할 시기에는 주로 세무 중심의 승계 자문 활동을 했지만 세금 문제가 완벽해도 승계 실패 사례를 많이 봤다”며 “해외 학계에서는 이미 가족기업 연구가 체계화돼 있음을 알고 국내 현실에 맞는 승계 모델 개발을 위해 박사 과정을 밟게 됐다”고 말했다. 김 소장이 이끄는 한국가족기업연구소는 조만간 ‘넥스트가업승계연구소’로 이름을 바꿀 예정이다.

그는 가업승계를 기업·가족·오너십·세대교체가 동시에 작동해야 하는 ‘통합적 과제’라고 규정한다. 경영자와 후계자의 관계, 가족 구성원 간 신뢰, 지배구조·지분의 안정성, 세금 계획, 리더십 전환 등 여러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흔들리면 기업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최근 출간한 저서 ‘가업승계 마스터플랜’에서 20여 년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승계 성공을 위한 핵심 프레임을 제시했다. 그는 “경영자들이 참고할 만한 종합적 가이드라인이 국내에는 부족해 책을 집필했다”며 “승계를 기업·가족·오너십·세대교체 등 4개의 테마로 구분하고 각 테마별로 반드시 준비해야 할 8가지 전략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가족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기반은 단연 ‘신뢰’다. 구성원이 늘어날수록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는 만큼 가족 구성원의 신뢰·합의는 승계 성공의 핵심 조건이 된다. 김 소장은 글로벌 명품 기업 에르메스의 사례를 들며 “가문 전체가 ‘기업을 함께 지킨다’는 공동 목표에 합의했기 때문에 5대를 이어 가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가족 간 갈등이 심화되면 기업과 가족 관계가 동시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단단한 가족 결속은 승계 전략의 출발점이자 마지막 단추”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한국에서 가업승계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과제가 필요하다고 김 소장은 제시했다. 승계 표준 모델과 진단체계(SMD) 보급을 통해 경영자의 현재 위치와 준비 수준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하고 승계 전문 인력을 양성해 중소·중견기업이 전문적 지원을 쉽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아울러 기업·전문가·학계가 협력해 한국적 승계 모델을 축적하는 생태계 기반 구축도 요구된다.

그는 가업승계를 단순히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소장은 “승계 실패는 한 기업의 붕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상실, 지역경제 위축, 세수 감소로 이어지는 국가적 손실”이라며 “가업승계는 가족 간 부를 물려주는 게 아니라 산업 지속성과 국가 경쟁력을 위한 것으로 한국 기업 생태계가 발전하기 위한 중요 요소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최근 김 소장의 관심은 중소·중견 가족기업의 디지털 전환에 맞춰져 있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이 업무 전반에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경영 체계의 표준화·자동화·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이 승계 안정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경영자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과 업무 표준화·자동화가 이뤄져야 후계자에게 안정적으로 기업을 넘길 수 있다”며 “디지털 역량은 후세대가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핵심 기반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승계는 언젠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며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경영자가 의지를 갖고 설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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