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으로 움튼 '문화의 씨앗'…송현서 이건희를 자유롭게 하라 [조상인의 미담]

2025-03-21

송현공원이 내려다 보인다. 서울시 종로구 중학동에 위치한 서울경제신문 사옥에서는 자리에 앉아서도 북악산과 경복궁을 마주하고 일어서면 턱 아래로 송현동과 북촌 일대를 바라볼 수 있다. 간판에 적힌 정확한 명칭은 ‘열린송현’.

■송현동의 역사

“경복궁 왼쪽 언덕의 소나무가 시들어 근방의 인가에 대한 철거를 명하였다.”

1398년 4월 16일에 적힌 ‘태조실록’에 송현동이 처음 등장한다. 왕이 친히 염려하신 소나무 언덕이 바로 소나무 ‘송(松)’자에 고개 ‘현(峴)’자를 쓴 지금의 ‘열린송현’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은 유교적 이상 국가를 꿈꾸며 풍수지리를 기반으로 종묘사직과 궁궐을 배치했는데 경복궁 동쪽에 인접한 송현은 북악산과 연결되는 지맥의 약한 기운을 채우는 곳이었다. 산맥의 모자람을 돕고 보충하는 ‘비보(裨補)’ 숲을 조성했던 것이다.

송현동 일대는 세종대왕의 막내아들 임영대군의 처소가 생긴 이후 점차 왕족과 권문세족의 거주지가 됐다. 대대로 서울에 살며 권력을 누린 이들 경화세족(京華世族)은 최첨단 문화를 발 빠르게 받아들이는 예술 애호가이기도 했다. 조선 왕실의 그림 전담 관청인 ‘도화서’도 경복궁과 가까운 송현동 근처에 있었다. 이렇게 예술이 생산되고 소비된 핵심 지역이 송현동이었다.

조선 말 송현동은 격변에 휩싸인다. 김옥균 등 이 지역에 살던 개화파가 시도한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몰수된 집 자리에 경성제일고보·중앙고보 등 근대식 학교가 들어섰다. 하숙촌이 조성됐다. 3·1운동 당시 보성고보 학생들은 송현동 하숙집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탑골공원으로 향하는 시위를 계획했다. 송현동은 지식인들이 모이고 예술인들이 꿈을 키우는 곳이 됐다.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김환기의 뮤즈이자 내조자였던 김향안(본명 변동림)은 ‘송현 마루턱’에서 나고 자랐다.

이후 일제의 조선식산은행이 송현동을 포함한 북촌 일대를 매입해 서구식 주택을 지었다. 해방 후에는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로 전환됐다. 높다란 돌담으로 에워싸인 송현동 일대 3만 7000㎡ 부지는 그렇게 100년가량 민간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철옹성이 됐다. 그 시기 송현동과 인접한 사간동·소격동 등 삼청로 일대는 미술거리로 발전했다.

송현동은 여전히 경복궁을 바라보고 있다. 경복궁 경내 서쪽에는 국립고궁박물관이, 동편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있다. 민속박물관 건너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자리잡고 있다. 송현동을 지나 광화문 쪽 세종문화회관 건너편에는 2012년 개관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위치했다. 8년여 발굴·정비를 거쳐 최근 역사공원으로 개방된 의정부터 바로 옆이다. 송현동의 동쪽 끄트머리는 서울공예박물관과 닿아 있다. 옛 풍문여고에 터를 잡고 2021년 개관했다. 크고 중요한 박물관·미술관들이 이처럼 모여 있는 곳은 우리나라 그 어디에도 없다. 경복궁까지 함께 있으니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는 2024년 한 해 동안 19만 명의 외국인 관람객이 다녀갔고 이는 미술관 4개관의 외국인 방문객의 86%였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열린 송현

송현동의 탁 트인 봄날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송현동 국립문화시설’에 대한 국제 설계 공모를 진행했고 당선작까지 발표됐다. 가칭 ‘이건희 기증관’에 대한 공모였다.

이건희(1942~2020) 삼성 선대회장이 타계하고 이듬해인 2021년 4월 28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유족은 고인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예술품 중 엄선한 일명 ‘이건희 컬렉션’ 2만 3000여 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전무후무한 이 기증은 전시를 보려는 인파가 긴 줄로 늘어서 미술관을 빙빙 에워싸는 ‘이건희 컬렉션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현안 연구로 내놓은 ‘이건희 컬렉션 관람의 경제 효과 분석’에 따르면 연간 관람객 약 300만 명, 경제 유발 효과는 3500억 원으로 전망됐다.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납할 수 있게 한 ‘물납제’ 시행 등 파급 효과도 이끌었다. 올 하반기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내년 시카고미술관과 영국박물관 등에서 이건희 컬렉션 해외 순회전이 예정돼 있으니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반인들에게 ‘미술품 컬렉션’, 즉 컬렉터가 철학을 가지고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션 문화에 대한 교육 효과가 확실했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 이후 전시 관람 인구가 급증하고 미술 시장이 급팽창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송현동에서 이건희를 자유롭게 하라

이제는 좀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이건희 기증관’이 필요한가? ‘이건희 컬렉션’ 기증에 대한 전 국민적 열기가 뜨거운 것을 본 당시 정부가 체계적인 검토 과정을 생략한 채 ‘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공식 발표해 버린다. 성급했다.

반면 기증자 쪽은 아주 신중했다. 삼성가(家)는 오랜 시간 기증을 준비했다. 기증받을 미술관·박물관이 어떤 유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따져서 한 점 한 점 기증품 목록을 작성했다. 비유하자면 식탁에 초대된 이들의 영양 상태 및 취향을 고려해 하나하나 음식을 대접했더니 맛있다며 이걸 커다란 한 접시에 몽땅 담아 비빔밥을 만드는 격이다. 이건희 컬렉션은 기증자의 뜻을 존중해 각각의 기관에 그대로 안착하는 것이 옳다. 유일한 국립미술관임에도 김환기의 점화, 이중섭의 소 그림, 박수근의 대작 하나 없던 국립현대미술관에 맞춤한 작품들을 기증한 뜻은 미술사 연구로 시대상을 그려낼 수 있는 큰 그림의 빠진 퍼즐을 채워 넣는 마음이었다. 마치 송현 언덕의 소나무들이 비보 숲으로 나라의 안위를 받들었듯.

우리도 컬렉션 미술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탈리아 베니스 여행을 풍요롭게 하는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이나 뉴욕의 ‘프릭 컬렉션’은 컬렉터의 수집이 대중의 향유로 확장돼 사랑받는 미술관들이다. 우리도 없는 건 아니다. 간송미술관은 컬렉터 간송 전형필의 수집 철학이 이뤄낸 곳이다. 한국 옛 여인들의 화장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한 유상옥 회장의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난개발에 사라질 뻔한 우리 석물 유산만을 모은 천신일 회장의 ‘우리 옛돌박물관’ 등 여러 사립박물관·미술관이 있다. 이건희 컬렉션의 수집 철학은 ‘리움미술관’이 계승하는 중이다. 그의 성을 딴 리움(Leeum)의 이름으로 소장품 전시가 열리는 와중에 다른 곳에 이건희 미술관이 생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 가문은 수집품을 기증해 ‘우피치미술관’을 건립했지만 이는 별도의 ‘메디치미술관’이 없기에 가능했다.

도쿄에 있는 일본 국립서양미술관이 기증 활용의 좋은 사례다. 가와사키중공업의 창업자인 마쓰카타 고지로의 기증을 기반으로 개관한 미술관이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면서 ‘마쓰카타 컬렉션’ 375점이 프랑스에 압류됐다. 1959년 외교적 노력으로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비롯한 르누아르·고흐·로댕 등의 걸작이 일본으로 돌아왔고 마쓰카타의 유족은 이를 국가에 기증해 국립서양미술관의 토대를 닦았다. 이 미술관은 ‘마쓰카타 기증관’이라 이름 붙이지 않았을 뿐 미술관 내 그의 기증에 대한 설명을 적어둬 누구나 그 이름을 기억하게 했다.

이건희 기증관 건립은 명분도 부족하지만 현실적 장벽이 더 높다. 미술관을 짓더라도 2만 3000여 점에 대한 수장고가 부족하고 청동기 유물부터 모네·피카소와 현대미술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소장품을 연구·관리할 전문 인력 확보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설계안까지 나온 마당에 잘못 잠긴 첫 단추를 다시 채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바로 지금이다.

송현동의 앞날은 어찌 될까. 귀한 땅을 선뜻 내어준 서울시의 뜻을 살려 미술관을 건립하는 게 이 땅의 역사나 주변 환경을 고려했을 때 바람직하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국립근대미술관 혹은 그 시대를 아우르는 ‘20세기 미술관’의 건립을 주장한다. 이 땅의 미술관 논의를 촉발시킨 ‘이건희 컬렉션’의 핵심 중 하나가 공립 미술관이 확보하지 못했던 주요 근대 미술품이었으니 타당하다. 가까이 국립현대미술관이 있으니 분관인 ‘송현관’으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주변 고궁·박물관·미술관과 협업해 새로운 시도를 그려내는 한국 ‘뮤지엄 콤플렉스’의 중심지로서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다. 기증받은 좋은 씨앗을 씨앗 주머니에만 넣어둬서는 안 된다. 꽃을 피우고 나무를 길러 송현동에 문화 숲을 조성하길 바라본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