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산물이 소비자에게 닿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친다. 건강하게 자란 가축을 오염 없는 환경에서 도축하고, 품질에 따라 등급을 부여한다. 소비자는 생산, 이동, 출하의 모든 과정을 담은 축산물이력번호를 통해 축산물의 출생부터 도축까지 모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정의 중심에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최근 ‘제2의 창립’이라 할 만큼 변화를 거듭했다. △축산물 품질평가 △이력·유통정보 관리 △유통혁신 등 전방위 업무에 ‘디지털화’를 더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축산 유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2월 19일 세종시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진행된 머니투데이 <더리더>와의 인터뷰에서 박병홍 축산물품질평가원장은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AI)을 통해 데이터를 활용하면 축산농가는 국민의 요구를 파악할 수 있고, 소비자는 정보를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다”며 “축산업 성장 지원, 대국민 서비스 확대, 행정 효율화를 목표로 축산유통 디지털 플랫폼 사업을 추진·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디지털플랫폼…효율적 유통 시스템으로 생산자 소비자 모두 ‘만족’

▲지난해 9월 3일 세종시 축산물품질평가원 본원에서 ‘디지털 플랫폼 정부 실천 선포식’이 열렸다./사진제공=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 디지털 전환 사업은 생산과 유통, 소비의 전 영역에 걸쳐 있다. 원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농가별 맞춤 품질정보 피드백’을 제공해 농가의 생산성 향상을 지원한다. 농가는 축종별 등급판정 결과 리포트를 조회할 수 있고, 빅데이터를 통해 농가 분석 결과도 확인할 수 있다. 박 원장은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활용해 협동조합이나 민간기업은 개별 축산농장의 수익성 제고에 도움 되는 피드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통 부문에서는 출하부터 도축까지 디지털 전환을 통해 효율적인 유통시스템을 조성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축산물 도축, 가공, 판매에 이르는 단계별 업무와 정보 제공이 가능한 전자문서지갑 시스템 ‘축산물원패스’를 구축했다. △가축 출하 신청 △통합증명서 발급 및 제출 △조회 등을 축산물원패스에서 진행할 수 있다. 박 원장은 “그 전에는 축산물을 유통하기 위해 5개 기관의 7종 서류를 종이서류로 발급받아야 했다”며 “이를 통합증명서로 간소화하고 ‘축산물원패스’ 앱에서 발급 및 조회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축산유통의 데이터화는 ‘소비자 신뢰 향상’으로 이어진다. 소비자는 축산물원패스에서 가축의 출생부터 도축·가공·판매까지의 정보를 담은 축산물 이력은 물론 등급, 유통 정보를 손쉽게 조회할 수 있다. 일례로 ‘자녀급식 서비스’를 이용해 급식에 사용되는 축산물의 등급이나 이력을 확인 가능하다.
가격 비교 서비스 ‘여기고기’ 서비스도 있다. 축산물 판매장이 자율적으로 가격 정보를 게재하면 소비자는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인근 판매장의 가격을 확인할 수 있다. 원이 조사한 △지역 △축종 △고기종류 △등급에 따른 평균가격도 제공해 적정 가격 파악도 가능하다. 박 원장은 “소비자가 가격 비교를 통해 우리 축산물을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라며 “원이 보유한 가격 정보를 소비자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대표적 환경친화 축산 정책 ‘저탄소 축산물 인증제’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따라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저탄소 축산물 인증 시범사업’ 총괄기관으로 지정돼 사업을 진행했다. 저탄소 축산물 인증을 획득하기 위해선 정부가 인정한 축산분야 탄소감축기술을 1개 이상 적용하고, 축종별로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10% 이상 절감해야 한다. 저메탄사료를 사용하거나 사육 개월을 조정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2023년 한우로 시작한 저탄소 축산물 인증사업은 지난해 돼지, 젖소로 확대됐다. 2023년 한우 71호 인증을 시작으로 지난해 △한우 34호 △젖소 52호 △돼지 104호 등 총 261호 농가가 인증을 획득했다.
원은 소비자의 가치 소비를 돕고, 참여 농가 확대를 위해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탄소 감축 우수농장 사례집을 발간해 선도농가·생산자 단체·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참여를 유도하고, 공중파 홍보를 통해 저탄소 축산물 인지도를 높일 계획이다.
많은 소비자가 저탄소 축산물을 접할 수 있도록 유통 활성화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아산교육지원청 등 관계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충남 지역 학교 급식에 저탄소 인증 돼지고기가 시범 도입됐다. 박 원장은 “온라인 이커머스, 공영홈쇼핑, 유통3사 등 인증 축산물의 판로 확대에 힘을 쏟을 것”이라며 “관계기관과 협업해 경기·충남·경북·제주 등 지역 학교 급식에 저탄소 인증 돼지고기가 도입되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꿀·계란 등급제로 소비자 신뢰 획득”

축산물 품질평가 업무를 집행하는 축산물품질평가원은 꿀·계란 등급제를 수행한다. 등급 판정 의무 품목은 아니지만 국산 축산물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꿀 등급제는 2014년부터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2023년 12월부터 본사업으로 전환해 운영 중이다. 꿀 등급제의 대상은 사양꿀이 아닌 꽃꿀이다. 식약처에서 정한 규격 검사를 마친 꽃꿀에 한해 품질기준에 따라 등급을 구분해 부여한다.
박 원장은 “엄격한 기준으로 품질검사를 거친 후 등급을 판정하고 있다”며 “사양꿀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꽃꿀만을 대상으로 하는 꿀 등급제가 소비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원은 규격검사 절차 효율화로 등급판정 소요 기간을 줄이고, 규격검사기관을 3개소로 확대해 신규 참여를 늘렸다. 품질검사 기관도 등급판정을 받은 꿀이 시장에 많이 유통될 수 있도록 지침 검토와 제도 설명회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홍보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신선도 높은 계란을 인증하는 계란등급제도 시행 중이다. 계란등급제는 크기, 껍데기 및 노른자·흰자 상태, 신선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1+, 1, 2등급을 부여한다. 올해 시행 22년 차를 맞았다. 소비자는 계란 껍데기와 속·겉포장지에 인쇄된 판정 표시를 통해 노른자·흰자 상태까지 믿고 구매할 수 있다.
소규모 선별포장업체의 참여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업체 소속 품질관리인이 자체 검사를 실시하는 ‘계란 품질등급인증제’도 2017년부터 시작했다. 원은 참여업체를 대상으로 품질관리 및 등급판정 직무교육 등을 제공해 자체 ‘품질관리인’을 양성하고 있다. 중·소규모 업체 등급판정 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각 업체 품질관리 역량을 향상하는 것이 사업 목적이다. 지난해 기준 품질등급인증제 참여업체는 42개소로 늘었다.
박 원장은 “유통업체의 의견을 반영한 등급판정 계란 표시 제도 개선을 통해 등급판정 계란 수출을 지원하고 등급판정 물량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디지털화 강조하는 농·축산 행정전문가

박병홍 원장은 35회 행정고시로 임용된 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축산정책국 국장, 농업정책국 국장, 식품산업정책실 실장을 역임한 농축산 정책 전문가다. 정책가로 볼 수도 있지만 그는 어린시절 과학자를 꿈꾸던 ‘이과형 인재’기도 하다.
평소 빅데이터나 디지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22년 축산물품질평가원장으로 부임하며 축산의 디지털·스마트화를 추진했다. 빅데이터 분석과 ICT 통합관리 등을 담당하는 디지털추진본부도 새롭게 구성했다. 그는 “축산업은 경험에 의존해 생산성을 높이거나 질병 예방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산발적으로 관리되던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역할을 ‘가교’로 규정했다. 정부의 업무를 위탁받아 집행하는 농식품부 산하 공공기관으로서 정부의 정책을 실행하고 현장의 개선점을 기관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농식품부에서의 경험으로 정책의 배경이나 역사를 알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업무를 집행할 수 있다”며 “정책 실행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비판적인 관점으로 현장의 문제나 상황을 건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은 현장 수요에 바탕을 둔 맞춤형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디지털·ICT 기반의 대국민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박 원장은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축산유통 체계를 확립하고 우리 축산물을 합리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박 원장과의 일문일답.
- 원의 명칭이 ‘축산물품질평가원’이지만 등급 판정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어떤 내용인가
▶우리 원은 △축산물의 품질 평가 △이력 및 유통정보 관리 △축산유통 혁신 업무를 담당한다. 의무 등급판정 대상 축종인 소, 돼지에 더해 꿀·계란 등급제를 진행해 국내산 축산물의 품질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5개 축종(소, 돼지, 닭, 오리, 계란)의 사육부터 판매까지의 이력 관리를 통해 효율적인 가축방역과 우리 축산물에 대한 소비자 신뢰에 기여했다. 축산물 가격, 유통 경로, 비용 등을 조사·발표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최근 축산유통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스마트축산 지원 △저탄소 축산물 인증 △곤충산업 육성 지원 △축산데이터 관리 총괄 등 신규 정책 지원사업을 수임받아 추진하고 있다.
- 축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진행하는 사업이 있다면
▶‘스마트축산’ 사업이 대표적이다. 생산성 향상, 노동력 절감, 가축 질병, 악취·분뇨 처리 등 축산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축산’ 사업을 진행, 축산업을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성장시키고자 한다. 우리 원은 2023년 9월 사업 이관 이후 장비 중심에서 데이터 기반의 솔루션으로 전환해 스마트축산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ICT 장비와 솔루션을 함께 보급하는 ‘농가 맞춤형 패키지’를 제공해 축산농가가 실질적으로 겪는 문제를 해결했다. 77호 농장에 21개 솔루션을 보급하는 성과를 거뒀다. 올해는 새롭게 구축되는 ‘스마트축산 빅데이터 플랫폼’으로 디지털 활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 국내 축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어떤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고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원의 뿌리 사업인 ‘등급판정’은 소비자들이 높은 품질의 축산물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고, 생산자에게는 고품질의 축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피드백이 된다.
가격 경쟁력은 유통혁신에서 나온다. 축산 유통의 디지털화를 통해 효율적인 유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전자출하시스템 △온라인 거래 확산 △유통 서류 전자화 등이 대표적이다. 가격비교 서비스인 ‘여기고기’ 등 가격정보 제공을 활성화해 시장 경쟁도 촉진하고 있다.
- 디지털화를 통한 행정 효율화도 강력하게 추진 중이다. 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우리 원은 데이터 통합관리를 통한 행정 효율화를 이뤄냈다. 유관기관의 축산정보를 연계한 ‘축산정보e음’과 기관별 수급정보를 모은 ‘수급지원 플랫폼’을 구축해 정책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ICT 기술을 활용한 품질평가와 데이터 기반 행정으로 업무 효율 증대도 기대할 만하다. 소, 돼지, 달걀 등 축종별 등급판정 업무를 기계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등급판정을 기계로 진행하면 세부적인 정보가 데이터화돼 모이기 때문에 농가에 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업무 효율성도 향상된다.
- 소비자에게 정확한 가격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축산업 활성화를 위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는 축산물을 선택할 때 신뢰할 수 있는 가격정보나 품질정보를 필요로 한다. 원은 축산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전국 조직을 통해 9개 축종 및 23개 업종을 대상으로 축종별 유통경로와 가격, 비용 등을 조사하고 있다. 생산, 유통, 소비 전반에 걸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해 생산·유통업체·소비자에게 제공한다. 더 많은 소비자가 축산물 가격정보를 찾고 비교할 수 있도록 가격비교 플랫폼 ‘여기고기’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 도매시장 온라인 거래를 유도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 가축전염병으로 인해 도매시장이 폐쇄된 경험이 있다. 축산물 유통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를 교훈 삼아 직거래도 온라인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온라인 경매를 촉진하고 있다. 축산물 장거리 운송에 따른 근출혈 등 하자 발생도 줄어 유통비용도 줄일 수 있다. 올해는 온라인 도매거래를 일반도축장까지 확대하고, 가축 출하·도축과 관련한 표준화된 전산관리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 2022년 부임 이후 원의 다양한 변화를 이끌었다. 인상적인 사업이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공기관으로서 정부 정책을 효율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경영혁신과 조직역량 극대화를 위해 노력했다. 기관장 주관 10개 지원 현장토론회를 운영해 직원들과 함께 업무 발전 방향을 모색했다.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고유 사업은 강화·효율화하고 신규 정책 사업은 기능별 협업이 강화되도록 조직을 재설계했다. 지속적인 성장 기반은 인적 역량 강화와 동기부여에서 나온다는 생각에 직무 중심의 인사정책을 수립했다. 부서 단위에서 직무별 정원 관리로 전환하고 직무에 적합한 인력을 배치·운영해 전문성을 강화했다. ‘나도 CEO 포럼’ 등을 통해 기관장과 직접 소통하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참여를 보장한 것도 컸다. 직원들과 함께 조직의 변화와 성과를 이뤄냈기에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 올해 사업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현장 수요에 바탕을 둔 맞춤형 사업을 추진하고, 디지털·ICT 기반의 대국민서비스를 제공하겠다. 불합리하거나 불편한 제도도 적극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축산유통 체계를 확립하고 우리 축산물이 더욱 사랑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박병홍 축산물품질평가원장
성균관대학교 행정학 학사
북경대학교 경영학 석사
행정고시 35회 임용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
농림축산식품부 차관보
농촌진흥청장
제12대 축산물품질평가원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