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선포한 비상계엄은 국내외에 놀라운 충격을 주었다. 그동안 한국 민주주의는 여러 한계에도 쿠데타나 계엄이 불가능할 정도로 공고한 것으로 믿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비상계엄 조치는 시민과 국회의 역량으로 극복해 민주주의 회복탄력성을 보여주었지만,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물론이고 어렵게 쌓은 매력국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엄청난 기회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책임을 져야 할 사람과 집단이 극렬 지지자를 동원하는 정치적 부족주의(tribalism)에 기대고 있는 것은 개탄스럽다.
이번 비상계엄 조치에 대해 미국은 ‘심한 오판’이라고 밝히는가 하면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는 등 한미동맹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또 어렵게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찾았던 한중관계도 다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사실 중국은 비상계엄 조치와 그 해제 과정을 지켜보면서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중국 외교부는 “우리는 최근 한국 정치 상황의 변화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이는 한국의 내정 문제로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다. 중국과 한국은 중요한 이웃이자 협력 파트너로서, 양국 관계를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양측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라고 밝히는 등 최대한 상황을 관리하는 신중 모드를 유지했다.
이러한 태도는 올해 5월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 계기에 개최한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의 회담, 그리고 11월 페루 리마에서의 한중 정상회담으로 만들어진 한중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고, 무엇보다 한국의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내정불간섭을 고수하면서 섣불리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뜻도 담겨있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국회에서 작성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들어있던 ‘중국을 미워하고 일본과 가깝게 지낸다’라는 의미의 구중친일(仇中親日) 비판을 은근히 즐기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12일 윤 대통령이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한 세 번째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상황이 크게 변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 내 군사시설을 촬영한 중국인 3명이 적발된 일과 드론으로 국가정보원을 촬영한 40대 중국인 사례를 들었다. 또한 중국이 생산한 태양광 관련 설비가 한국의 삼림을 훼손할 것”이라고 의도적으로 중국을 소환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즉각 ‘놀랍고(意外) 불만’이라고 반발하면서 “한국이 내정 문제를 중국 관련 요소와 연관해 ‘중국 간첩’이라고 선전하고 정상적인 경제·무역 협력을 해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하며, 이러한 상황은 한중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한국 외교부가 “국내 상황과 관계없이 중국과 필요한 소통을 하면서 한중관계를 지속 발전시켜 나가자”라고 수습하고자 했지만, 되돌아선 중국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의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에 대한 중국 학계의 반응도 뜨겁다. 특히 윤 대통령의 중국 관련 발언 이후 분위기가 크게 변했다. 우선 필자가 중국 학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소셜미디어 문자는 ‘한국 시민들을 존경한다’, ‘한국 시민이 거꾸로 가는 국가를 바로 세웠다’라는 것처럼 중국에는 없는 한국의 시민역량에 대한 존중이다. 둘째, 중국 이슈를 국내 정치로 끌어들이는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다. 즉 한국 사회에 넓게 퍼진 반중 정서를 활용해 지지 세력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한중관계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셋째, 중국의 대한국 정책은 탄핵 국면에서 추진 동력을 잃은 상황에서 최대한 전략적 인내를 유지하면서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새 술을 새로운 술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국의 체제 구속성을 고려하면 학계 논의는 중국 정부의 시각과 궤를 같이한다.
비상계엄용으로 중국 문제를 소환한 상황에서 한중관계 단추도 다시 끼워야 할 처지가 되었고 이것은 고스란히 외교적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특히 한번 국내외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정치적 유효기간은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추진 동력도 크게 떨어질 것이다. 이러한 매몰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국회의 초당파적 대중국 공공외교를 통해 당분간 그 공백을 메울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