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국가적 경축일을 대규모 열병식으로 기념해왔다. 의미가 클수록 열병식은 더욱 성대해진다.
2019년 10월 1일 열린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은 동원된 군인과 관중 수를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꼽힌다. 당시 톈안먼광장에서 취재하던 기자의 왼편에는 한국 기자들이, 오른편에는 북한 기자들이 자리했다. 언어적 장벽이 없었기에 남북 기자들 사이에는 열병식에 대한 의견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기자는 1만5000명의 장병과 580여대의 군사 장비, 160여대의 군용기가 등장하는 규모에 감탄했지만, 북한 기자들은 “시시하다”며 “우리(북한)의 열병식이 훨씬 더 낫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관심은 숫자가 아니라 발걸음에 있었다. 북한 군인들의 제식 각도와 리듬, 힘이 중국 군인들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열병식에서 드러나는 행진의 각도와 리듬 그리고 대열의 일사불란함은 단순한 군사훈련을 넘어 권력자가 자신을 연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병사들의 발걸음은 곧 체제의 언어이며, 권위주의 정권은 이를 통해 힘과 충성을 시각화한다. 중국과 북한 같은 권위주의 국가는 제식에 체제의 위엄과 메시지를 담는다.
중국이나 북한 열병식에서 상징적인 장면은 수천, 수만 명의 병사가 다리를 허리 높이까지 들어 올리며 마치 로봇처럼 행진하는 거위걸음(goose step)이다. 영국 역사학자 노먼 데이비스는 <유럽: 하나의 역사>에서 거위걸음의 기원을 17세기 프로이센 군대에서 찾는다. 이 행진법은 장군들에게는 병사들이 어떤 고통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명령도 견딜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민간인에게는 불복종은 철저히 짓밟힐 것이라는 경고가 됐다. 적국에는 ‘단순한 군복 차림의 청년이 아닌 초인적 군대’라는 인상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거위걸음은 독일과 프로이센 군대에서 20세기까지 이어졌고, 제정 러시아를 거쳐 소련군으로 계승됐다. 그러나 대중에게 가장 강하게 각인된 사례는 나치 독일이었다. 히틀러는 경직된 경례와 거위걸음 같은 신체적 제스처가 병사들 사이의 결속과 충성을 강화한다고 믿었다.
중국과 북한은 모두 소련식 행진법을 이어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 정치적 목적과 연출 방식에 맞게 변형해나갔다.
1949년 마오쩌둥 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뒤 중국은 ‘정부(正步)’라는 이름으로 거위걸음을 채택해 질서를 부각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인 1980년대부터는 중국 특색의 제식으로 발전시켰다. 중국의 거위걸음은 북한보다 낮은 약 45도 각도를 유지하며 보폭은 넓지만, 정밀성과 균형미를 강조한다. 최근에는 드론(무인기)을 활용한 다양한 촬영 기법이 도입되면서 발의 높이보다 대열의 직선과 대칭미가 더욱 중시되고 있다. 외신은 이를 두고 “컴퓨터 그래픽 같은 정밀함”이라고 평가한다.

북한식 ‘바운스 구스스텝’, 극대화된 위압감
북한도 초기에는 소련식 거위걸음을 도입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이를 변형해 다리를 탄력적으로 튕기듯 들어 올리는 독특한 행진법을 선보였다. 이른바 ‘바운스 구스스텝’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시각적 위압감을 극대화한다. 이러한 퍼포먼스에는 “지도자와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병사들의 강인한 체력과 충성심을 과시하는 정치적 연출 측면이 강하다.
탈북 군인들에게 열병식 훈련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심모씨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북한의 열병식은 세계 최고”라며 자부심을 드러냈지만, 당시 6개월 동안 하루 6~10시간씩 주 6일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열병식 후유증으로 대부분이 신경통, 허리 통증, 디스크 질환에 시달린다고 한다.
러시아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병식을 열 때 여전히 거위걸음을 사용하지만, 북한의 행진처럼 극단적으로 각을 세우지는 않는다. 병사들이 오와 열을 칼같이 맞추는 정렬에 초점을 두며 위압감보다는 전통과 형식의 상징성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거위걸음은 중국이 홍콩에서 애국을 강조하는 상징적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2021년 2월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PLA)은 홍콩 경찰에 직접 중국식 제식을 훈련하기 시작했다. 이는 2022년 7월 1일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 의장 퍼레이드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홍콩은 기존의 영국식 제식을 폐지하고 중국식 제식으로 전환했다. 홍콩 경찰은 “애국심 고양”과 “식민 잔재 청산”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홍콩을 하나의 체제 아래 통합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홍콩으로 번진 거위걸음, ‘하나의 중국’ 상징
권위주의적 지도자일수록 열병식을 선호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월 14일 미 육군 창설 250주년이자 자신의 79번째 생일에 맞춰 워싱턴 기념비 앞에서 열병식을 열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은 굳이 열병식을 통해 힘을 과시할 필요가 없었다. 걸프전 이후 34년 만에 열린 이 행사는 트럼프가 1기 집권 당시부터 염원하던 것이었다. 당시에는 군의 정치화를 우려한 군 지도부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한 2기 들어서는 그를 제지할 세력이 사라졌다. 다만 미국의 행진은 거위걸음처럼 위압적인 연출이 아니라 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형태였다.
지난 9월 3일 열린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66년 만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톈안먼 성루에 나란히 서서 반미 연대를 과시했기 때문이다. BBC는 이를 “전형적인 정치적 연극”이라 평가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불편하게 만든 것이 열병식에 등장한 무기 자체가 아니라 정상들이 과시한 연대라고 분석했다. 이날 행사 카메라는 군인들의 칼각을 맞춘 행진을 비추며 체제적 통제의 이미지를 극적으로 부각했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1941년 “군사 퍼레이드는 사실상 의례적 춤, 발레와도 같은 것으로 특정한 삶의 철학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는 군대의 제식 행진이 그 나라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판단했다. 오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스트 군대가 채택한 거위걸음에 대해 “벌거벗은 힘의 선언에 불과하며,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광경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오웰이 이런 비판을 남긴 지 80년이 지났지만, 열병식과 거위걸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