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국·호주 협력체 오커스
2030년대 초까지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제공키로 했지만
'우선순위' 밀릴 가능성 높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조선업 관련 한국 협력을 요청한 가운데 우리 방위산업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양자 협력을 넘어 미국·영국·호주가 출범시킨 오커스(AUKUS)와도 접촉면을 넓혀 국익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오커스는 중국 견제를 위해 지난 2021년 출범한 안보 협력체로, 미국과 영국은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SSN)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첫 단계로 2030년대 초까지 미국이 버지니아급 SSN 3~5척을 호주에 인도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다.
미국과 영국 모두 자체 해군력 강화에 공을 들여야 하는 데다 잠수함 사업 특성을 고려하면 '속도전'을 펼치기 어려울 거란 지적이다.
무엇보다 탈냉전 이후 계속된 '평화의 시기'가 방위산업 생태계를 약화시켰다는 평가다. 잠수함의 경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고 관련 기술의 민간 활용도 여의찮아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수요가 적으니 투자가 이뤄지기 어려웠고, 자연스레 업계 종사자까지 줄어 만성적 생산 지연, 비용 초과 문제를 안게 됐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미국과 영국이 자국 안보 역량 강화를 위해 SSN 추가 건조를 추진 중인 상황에서 호주를 먼저 챙겨줄 겨를이 있겠느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실제로 미 의회조사국은 현재 미국의 생산 및 유지·관리 역량으로는 호주 측에 SSN을 판매하지 않더라도 '전력 목표'보다 24% 낮은 수준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미 해군은 66척의 SSN 전력 확보·유지 목표를 설정했지만, 현재 보유 SSN은 49척에 불과하다.
뛰어난 선박·잠수함 건조 인프라
MRO 지리적 이점까지 갖춘 한국
오커스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거란 관측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한국이 '구원투수'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뛰어난 선박·잠수함 건조 인프라를 갖춘 데다 유지·보수·정비(MRO)에 있어 지리적 이점까지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피터 워드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 연구위원은 최근 연구소를 통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잠수함·선박 건조 역량은 오커스의 다양한 분야 지원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미국 잠수함·선박 MRO를 한국 조선소가 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장비 노후화 등으로 MRO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한국 역할이 중요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올해 초 우리 조선소를 둘러본 미 해군 관계자들은 "미국에 그대로 적용했으면 좋겠다"며 만족감을 보인 바 있다. 긍정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국내 한 기업은 최근 미 7함대가 발주한 함정 MRO 사업 2건을 모두 수주했다.
워드 연구위원은 "미국의 주요 MRO 시설은 (인도·태평양) 전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며 "전구 근처에 중요한 자산을 유지·관리하고 정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도 했다.
이어 "호주와 영국도 상당한 정비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한국 업체가 호주 및 미국에 진출할 예정인 만큼, 추가적인 MRO 협의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한국의 본격적인 참여를 위해선 한미 양국이 '국방 상호조달 협정(RDP-A)'을 맺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한미 국방장관은 '내년까지 RDP-A 체결을 목표로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 바 있다.
반도체, 핵연료, 희토류 등
한·오커스 공급망 협력도 가능
워드 연구위원은 오커스 3국이 안정적 핵연료 공급에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전 세계 최대 우라늄 매장국이지만, 관련 산업 생태계는 빈약한 호주의 최적 파트너가 한국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러시아와 중국이 농축 우라늄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 공급망 구축에 대한 요구가 커짐에 따라, 한국이 역할과 책임을 강화해 오커스와 접점을 넓혀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공급망 관점에서 한국의 제조 역량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는 물론, 희토류 정제, 금속 주조 등과 관련한 안정적 공급망 구축에 한국이 기여할 수 있다는 평가다.
워드 연구위원은 "한국은 조선 역량, 잠수함 함대, 민간 핵(원자력) 산업, 그리고 선진적이고 광범위한 제조 부문을 보유하고 있다"며 "최소한 한국은 오커스가 직면한 공급망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