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3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을 찾은 윤혜원(14·숙명여중 2학년)양은 자신의 키만한 대형 칠판에 막힘없이 수식을 써내려갔다. 하얀 칠판은 어느새 수식과 도형으로 가득찼다. 그가 무릎까지 꿇어가며 풀이한 문제들은 7월 호주에서 열린 제66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대회(IMO)에서 출제됐던 문제다.
윤 양은 이번 IMO에 출전한 한국 국가대표 학생 중 유일한 중학생 참가자다. 20년 만의 중학생 국가대표인 윤 양은 총 6문제 중 5개에서 만점을 받아 35점을 따냈다. 모두 서울과학고 재학생인 다른 참가자 3명과 함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한국 최연소 IMO 금메달리스트다. 윤 양의 목에는 메달 하나가 더 걸렸다. 대륙별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여성 참가자에게 수상하는 미르자카니상이다.
윤 양은 수학 문제 속 규칙을 하나씩 깨달아가며 수학에 흥미를 갖게 됐다. 윤 양은 “여러 수학 분야 중에서도 정수와 조합을 가장 좋아한다”며 “제곱수(1, 4, 9…) 간격이 항상 홀수인 것을 발견했을 때, 숫자에 이런 여러가지 규칙이 있는 게 아름답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하나의 문제를 3시간 넘게 고민하다 풀었을 때 기쁨이 컸다. 그때부터 수학을 좋아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윤 양에게 수학이 재미의 영역이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윤 양 가족이 사는 집 거실엔 7~8명이 족히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과 칠판이 있다. 집에 가면 윤 양을 포함한 세 자매와 아버지, 어머니가 이 테이블에 모여 앉는다. 공부하면서 어려웠던 문제를 칠판에 적고 풀이 과정은 어땠는지, 어떤 부분에서 풀이가 막혔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일상이다. 한 번 칠판에 적힌 문제들은 윤 양 자매가 스스로 해답을 찾을 때까지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칠판을 지킨다. 이 과정에서 윤 양의 아버지는 딸들에게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묻고 또 물었다.
IMO 참가 학생 사이에서도 윤 양이 즐거움 때문에 수학 공부한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IMO 한국대표단장인 유호석 세종대 교수는 “윤 양은 요즘 다른 학생들과 달리 유튜브도 안 볼 정도로 수학에 푹 빠져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윤 양은 영재고 진학을 준비 중이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으레 진학하는 의대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의대 공부는 무작정 암기 방식의 공부가 많다고 들었는데 외우는 건 잘 못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저는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으니 공부해서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환경이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며 “저렴하게 이용 가능한 인공지능(AI)을 개발해 다른 사람이 쓸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