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서 탐방객 사진 촬영 적발…철조망·CCTV·순찰 조치
4년 전 47개체서 최근 10~20개체 늘어나…“출입 통제해야”
지난 5월15일 새벽 강원 태백의 태백산국립공원. 검룡소 주변을 순찰하던 국립공원공단 직원이 멸종위기 식물 ‘나도범의귀’ 자생지에 접근한 탐방객 2명을 적발했다. 국내에서 태백산에만 자생하는 이 희귀식물의 개화 시기인 5월을 맞아 탐방객들이 사진을 찍으려 접근해 해를 끼치는 일이 발생할까 특별순찰을 하던 중이었다.
지난달 30일 방문한 태백산 검룡소의 나도범의귀 자생지는 5월 탐방객 무단출입 이후 철조망 등 보호조치가 된 상태였다. 탐방객들이 탐방로에서 이 식물의 자생지로 가지 못하도록 국립공원공단 측은 바로 철조망을 쳤다. 나도범의귀에 대한 연구·조사를 위해 무인카메라도 설치했다. 희귀식물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보호조치가 실행된 것이다.
검룡소에서 나도범의귀가 사라지는 것은 국내에서 이 식물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2020년 국립공원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에선 검룡소 내 2개 지점에서 47개체만이 발견됐다. 북한에서는 백두산 일대에 이 식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도범의귀는 ‘범의귀’와 비슷한 생김새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세계적으로는 중국, 시베리아, 북미 등 추운 지방에만 사는 식물이다. 나도범의귀는 빙하기 당시 한반도에 살았던 식물 중 한국 내에 남아 있는 잔존식물 중 하나다. 기온 상승에 취약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북방계 식물이기도 하다. 실제 검룡소 내에선 잎의 크기가 약 2㎝로 100원 동전과 비슷한 나도범의귀가 가는 줄기와 뿌리를 당단풍나무 밑동 이끼 위에 겨우 내린 채 자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철조망이 없다면 탐방객이 밟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취약한 모습이었다.
생물분류학 전문가인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덕유산 광릉요강꽃 군락의 사례처럼 태백산 나도범의귀 자생지 역시 강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나도범의귀는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주변 낙엽을 정리하는 등 사소한 행동만 해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는 취약한 상태”라며 “국립공원공단이 책임을 지고 멸종위기 식물을 지켜내는 모범 사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위적 교란 외에도 나도범의귀 군락이 몸을 의탁하고 있는 당단풍나무가 부러질 경우 이 식물 전체가 사라질 수 있다. 유전적 다양성 없이 모두 같은 염기서열을 가지고 있어 만약 질병 등에 걸리면 한순간에 멸종할 우려도 있다.
다행히 공단의 보호조치가 성과를 거두면서 47본이던 개체수가 소폭이지만 늘어나고 있다. 땅 밑에서 뿌리가 연결돼 있는 특성 때문에 정밀조사를 해봐야 정확한 개체수를 파악할 수 있지만 올해 들어 10~20개체 정도가 늘어난 것으로 태백산국립공원사무소는 파악하고 있다.
태백산국립공원사무소는 탐방객들의 나도범의귀 자생지 접근을 막기 위해 철조망을 추가로 설치하고, 매년 꽃이 피는 기간에는 탐방객들이 출입할 가능성이 있는 새벽시간대에 순찰을 실시할 계획이다. 연구 목적의 방문도 엄격하게 심사해 허가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