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드라마 ‘에스콰이어: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이하 에스콰이어)에 출연한 배우 정채연에게 촬영 후 맥주 한 모금은 빡빡한 일상의 한 줄기 낙이었다. 매번 그렇지는 않지만, 어려운 촬영이 있던 날 숙소나 집으로 와서 마시는 맥주는 그날의 피로를 모두 날리는 청량제였다. 하지만 그는 ‘에스콰이어’를 준비하며 그 좋던 술을 끊었다.
이유는 이 작품이 그에게 있어 여러모로 새로운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로맨틱 코미디나 생활 연기를 넘어서 전문직인 변호사를 그리는 첫 번째 작품이었고, ‘배우’ 정채연의 더욱 넓어진 모습을 만방에 알릴 기회였기 때문이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몸에 깃드는 법. 그는 일상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에스콰이어’ 강효민 역을 준비했다.
“일 끝나고 잘 씻고 맥주 한잔하는 게 딱 좋거든요. 처음 대본을 보니 제가 할 양이 많다 보니 부담이 있더라고요. 무거운 마음에는 맥주가 잘 안 들어가니까요. 그래서 이번 작품은 공부하는 분위기로 임했어요. 생활방식도 건강하게 바꿨죠. 오전에 공부하면 머리가 돌아간다고 해서 공부도 하고요. 조금의 알코올도 허락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임하니까 머리가 맑아졌어요.”

정채연이 이렇게까지 절치부심으로 ‘에스콰이어’를 준비했던 이유는, 이 작품의 강효민 역이 정채연이 기존에 맡아보지 않았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강효민은 극 중 법무법인 율림의 신입 변호사였다. 언어에 천재적인 능력이 있기에 이런 부분이 배어나야 했다. 게다가 유전적으로 청각장애가 있는 언니 강효주 역까지 1인2역도 소화해야 했다. 법조인으로서 많은 대사 역시 어려움이었다.
“모든 직업은 쉬운 게 없지만, 저는 안 해본 직업군이었어요. 살면서 한 번도 법률용어를 본 적도 없고 들여다본 적도 없었거든요. 이렇게 작품으로 간접경험을 해보니까,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어디 편을 들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현장에서도 많이 토론했지만, 변호사는 굉장히 대단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효민은 신입변호사로서 조직과 선배들에게 적응하는 것과 별개로 각종 소송들을 겪으면서도 성장한다. 나중에는 과거 학창 시절 학교폭력을 방관했던 자신의 어두움과도 마주한다. 결국 한 사람의 변호사, 그에 앞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어두움도 직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과정에서 선배 윤석훈(이진욱)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저의 전작품이 ‘조립식 가족’이라는 작품이었어요. 그 작품에서 했던 주원 역은 굉장히 밝고 에너지가 있는 아이였거든요. 제가 텐션이 높지는 않은 편이라, 이를 끌어올리는 게 어려웠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의 결은 비슷했을지 몰라도, 또 다른 부분에서 에너지를 쓰는 느낌이었어요.”
그는 극 중 인상 깊은 에피소드로 치매에 걸린 아내를 데리고 조력사망의 여정을 떠나는 남편의 상황을 꼽았다. 과연 살인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병원의 과실이 문제가 된 이른바 ‘정자 멸실’사건도 그랬다. 실제 ‘에스콰이어’의 작가는 현직 변호사인 박미현 작가의 대본이었다. 제작진은 그에게 “외국에는 더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많다. 물론 에피소드가 허구이지만, 외국의 사례는 그렇다”고 말해줬다.
“사람이 웃거나 울 때 거울을 보지 않잖아요. 이 작품을 하면서 얻었던 성취감은, 제가 저를 우연히 관찰할 때 나왔던 것 같아요. 이런 연기를 하면 이렇구나, 저럴 때는 그렇구나 하고 저의 다른 모습을 볼 때 나오는 성취감이죠. 최근에 아침마다 일기를 좀 쓰게 되는데, 저도 모르게 극 중 인물이 돼 의뢰인의 마음을 헤아리자는 다짐을 쓰고 있더라고요. 그럴 때는 성취감이 생겨요.”

걸그룹 다이아의 멤버로 데뷔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아이오아이(I.O.I)로도 활동했다. 연기자로서는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연모’ ‘금수저’ ‘조립식 가족’ 등에 출연했다. 분명 설정 자체는 사극이나 판타지도 있었지만, 정채연의 모습은 기존 그의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이어가는 작품이 많았다. 하지만 장르물인 이 작품에서 정채연은 더 나아갈 동기를 얻었다.
“힝상 뭐든 시작할 때는 두려움도 크죠. 도전도 하고 싶지만, 막상 잘 안 되기도 해요. ‘에스콰이어’를 하고 든 생각은, 정말 선배님들 중에서도 새로운 역할을 끊임없이 하시는 분들이 대단하시더라고요. 이전의 저와 다른 역할을 하면서 뭐지 모를 성취감이 있습니다. ‘에스콰이어’의 시즌이 진행돼서 이진욱 선배님처럼 ‘선배미’가 나오는 인물도 하고 싶고,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처럼 정채연도 ‘정채연을 꿈꾸고’ 있다. 많은 경험을 하고 힘든 일도 받아들이고 수용하며, 넘어지면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을 꿈꾼다. 막연한 동경이었던 배우가 생활이 됐지만, 더 나은 배우를 꿈꾸기도 한다. 꿈이 있다는 것은 살아 움직인다는 증거다. 정채연은 매일매일 ‘더 나은 정채연을 꿈꾸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