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평균 '당기유효세율' 비교
삼성·SK 24%인데, TSMC 12% '절반'
주요국 돈 푸는데, '韓 보조금법' 좌초
'K-칩스법', 알맹이 빠진 채 국회 통과
세계 반도체 패권경쟁은 '국가 대항전'
"시간이 경쟁력, 빠른 법안 통과 절실"
우리나라를 세계 반도체 강국으로 올려놓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의 최근 5년 평균 '조세 부담' 비율이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시장경제>가 세 회사 사업보고서 중 '법인세 주석'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경제계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범 정부적 지원책 마련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이 같은 격차는 당분간 좁혀지기 어려워 보입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영향으로 국회의 모든 일정이 멈춰섰기 때문입니다. 정부 차원의 조세 지원 확대는 고사하고 현재 시행 중인 세액공제 혜택마저 중단되거나 축소될 위기입니다.
세계 주요국들이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우리만 정치적 이슈에 갇혀 경쟁에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의 최근 5년 평균 '당기유효세율'은 각각 24.02%, 24.04%, 12.92%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TSMC의 조세 부담 정도가 우리나라 기업들보다 두 배 가량 적다는 의미입니다.
☞당기유효세율이란
-분자(당기법인세)를 분모(법인세차감전순이익, 이하 세전이익)로 나눈 값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는 기업의 조세 부담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유효세율'이 쓰입니다. 당기유효세율과 차이점은 위 계산식에서 분자의 당기법인세 대신 손익계산서상 '법인세'를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당기법인세는 당해 사업연도에 실제 납부해야 할 법인세 부담액을 말합니다. 손익계산서상 법인세와 달리 '이연법인세'가 빠져있습니다.
-이연법인세는 회사 간 실질적 조세 부담 차이를 구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발생주의에 기반한 회계상 이익과 현금주의에 따른 과세표준 간 차이가 일시적일 경우, 이 차이로 인한 세금효과를 다음 회계연도로 이월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자산과 부채의 장부가액이나 회계상 각종 수익, 비용의 인식 시점 등을 회계법인 또는 경영진이 결정할 수 있다 보니, 회사의 경영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크기 때문입니다.
-당기유효세율이 유효세율보다 기업의 조세 부담률을 더 정확히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되는 이유입니다.
TSMC의 당기유효세율은 2023년 14.0%, 2022년 12.9%, 2021년 13.5%, 2020년 12.5%, 2019년 11.7%였습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2023년 44.8%, 2022년 14.8%, 2021년 20.5%, 2020년 21.2%, 2019년 18.8%를 기록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0.5%, 2022년 56.3%, 2021년 25.4%, 2020년 17.5%, 2019년 21.3%로 나타났습니다.
SK하이닉스의 당기유효세율이 2023년 마이너스로 전환된 것은, 당해 사업연도 실적 악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됩니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4조27억원이던 세전이익이 지난해 -11조6578억원으로 적자 전환했습니다.
반도체는 21세기 산업의 쌀로 불립니다. 반도체가 없다면 스마트폰, TV, 자동차와 같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전자제품 모두가 멈춰서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이후 반도체 공급 대란이 일어나며, 세계 주요국들은 앞다퉈 반도체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대만에 이어 유럽까지 가세하며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최근 자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9조원에 가까운 보조금으로 지급했습니다. 일본도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국 기업 라피더스에 2조원 상당의 보조금을 추가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들 기업 모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 상대입니다.
주요국 정부가 자국의 반도체 기업을 전폭적으로 돕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보조금을 지원할 근거조차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반도체특별법'이 준비됐지만 비상계엄 사태 이후 모든 논의가 중단됐습니다.
반도체 공장에 대규모 전력 공급을 책임질 '전력망특별법'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관련 법안이 계류 중입니다.
올해 내 관련 법안 처리가 불투명해지면서 당장 새해 사업계획에 맞춰 공장을 돌려야 하는 기업들 속은 바짝 탈 수밖에 없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도체 기업의 투자를 유도, 지원하는 내용의 'K-칩스법'마저 사실상 좌초됐습니다. 반도체 투자세액 공제율(대기업 15%·중소기업 25%)을 5% 높이고, 현행 1%에 불과한 연구개발(R&D)용 시설장비 투자 공제율을 20%로 상향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국내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입니다. 투자세액 공제율(15%)을 현행대로 3년 연장한다는 내용만 겨우 통과됐습니다.
미국의 경우, 시설장비 투자 공제율이 25%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우리 기업의 투자가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만 더 커진 셈입니다.
☞K-칩스법이란
-반도체를 포함한 국가 전략산업에 투자하는 기업의 ‘세액공제비율’ 확대에 초점을 맞춘 법안입니다.
-현행 시설 투자비 관련 세액공제율은 대기업의 경우 15%, 중소기업은 25%입니다. 연구개발(R&D)용 시설투자에 대해선 1%의 세액공제율을 적용합니다.
-지난해 3월 통과된 이 법은 올해 말까지가 일몰기간이었습니다. 이 기간을 3년 연장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당초 여야는 반도체 투자세액 공제율을 각각 5% 상향하고, 연구개발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1%에서 20%로 높이는데 합의했지만, 계엄 정국을 계기로 없던 일이 됐습니다.
☞반도체특별법
-반도체 기업에 정부가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고, 연구개발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를 허용한다는 내용의 법안입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소관 상임위 심의도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세계 반도체 시장은 우리 기업에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도체 패권 경쟁이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바뀌면서, 개별기업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려는 여야 정치권의 초당적인 협력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사업계획을 수립 중인 반도체 기업들에 가장 큰 위협은 불확실"이라며 "적어도 정부 지원에 대한 불확실성은 해소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반도체 산업은 시간이 경쟁력"이라며 "빠른 법안 통과가 절실하다"고 부연했습니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반도체특별법은 대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닌 무쟁점 법안'이라며 "법안 통과를 넘어 대국적인 차원에서 기업의 투자가 지속될 수 있도록, 법인세 인하와 같은 추가 세제 혜택 지원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 보좌관은 "2중, 3중으로 기업에 모래주머니가 채워지는 등 기업을 운영하기에 가혹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경제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기 때문에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