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힘] 12월, 사월의 끝을 다시 떠올리다

2025-12-26

새해가 오기 전의 시간은 들뜨기도 하지만 가끔씩 서럽고 무겁거나, 혹은 회한이 밀려온다. 실천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속상함, 사랑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서러움,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이 묻어나는 달이 바로 12월이다.

12월의 시간은 늘 정리하는 쪽으로 흐른다. 무엇을 더 해야 할지보다, 무엇을 끝내 하지 못했는지가 먼저 떠오른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앞에 두고서야 마음은 비로소 멈춘다.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 두었던 감정들,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며 덮어 두었던 장면들이 이때가 되어서야 제자리를 찾으려 한다. 그래서 12월은 유난히 마음이 느려지는 달이다. 계획을 세우기보다 기억을 꺼내 들게 되고, 말하려던 것보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더 또렷해진다.

이달에는 설명이 잘 통하지 않는다. 잘 해냈다는 말보다, 애써 괜찮은 척해 왔다는 고백이 먼저 떠오른다. 괜히 혼자 있는 시간이 늘고, 저녁이 빨리 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 번 더 가라앉는다. 12월의 무게는 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 낸 축적에서 온다. 한 해 동안 쌓여 온 선택과 포기, 다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회색빛 하늘이 보이는 날에는 가끔씩 하늘을 본다. 비가 오기 직전처럼 공기가 눅진한 날, 문득 한수산의 단편 <사월의 끝>이 떠오른다. 사월이라는 계절의 끝에 놓인 이 작품은, 무언가가 이미 지나갔음을 크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의 일상 속에 스며든 불안과 상실의 기운을 조용히 보여준다. 봄의 끝이라는 계절적 배경은, 사실 어떤 시간의 끝을 가리키는 표식에 가깝다.

이 작품에는 극적인 사건이 거의 없다. 인물은 무엇을 잃었다고 분명히 말하지도, 그것을 애도하지도 않는다. 다만 하루를 살아내는 동안 설명되지 않는 허전함과 무력감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감지하면서도, 그 사실을 말로 확인하지 않는 태도가 이야기를 지탱한다. 그래서 이 단편은 읽는 이를 설득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기억과 상실을 자연스럽게 불러낸다.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다. 왜 그렇게 마음이 서늘해지는지 알지 못한 채, 책장을 덮고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월의 끝이라는 제목은, 봄의 끝이라기보다 어떤 시간의 종료처럼 느껴졌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무언가가 있다는 감각만 남았다.

그 감각은 12월이 되면 다시 선명해진다. 한 해의 끝이라는 사실이, 사월의 끝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들이 많은데도, 시간은 끝을 향해 간다. 붙잡고 싶은 순간이 있어도, 되돌릴 수는 없다. 12월의 서러움은 그래서 특별하다.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기보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이제야 제대로 인식하게 되는 시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그 감정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아졌다. 회색빛 하늘이 드리운 날이면, 별다른 계기 없이 아버지가 떠오른다. 특별한 장면이 아니라 말없이 곁에 있던 뒷모습, 필요할 때 묻지 않고 내밀던 손길 같은 사소한 기억들이다. 그런 기억들은 늘 12월에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한 해를 정리하는 마음 위로, 정리되지 않은 사람이 함께 올라오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이 단편이 함께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월의 끝이 보여주는 것은 상실 그 자체가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시간이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감정, 애써 이름 붙이지 않아도 몸에 남아있는 기억들. 그 시간 속에서 사람은 살아가고, 또 한 해를 통과한다.

그래서 12월은 그런 기억들을 쉽게 숨겨 두지 못하게 만든다. 한 해의 끝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자연스럽게 지나온 시간을 향한다. 그래서 이달은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이기보다, 아직 끝내 보내지 못한 사람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다.

장하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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