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대구 덕화중의 임선하 교사(수학)는 이번 학기 AIDT(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를 ‘느린 학습자’(경계선 지능인) 학생들을 위한 방과후 수업에 도입했다. AIDT 코스웨어로 진도가 각기 다른 학생들에게 수준에 맞는 문제를 제공했다. 맞춤형 문제로 배운 학생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12분 만에 한 문제를 겨우 풀던 학생이 풀이 속도를 1분까지 당겼고, 수업마다 멍하니 앉아있던 학생은 누구보다 열심히 질문하기 시작했다. 임 교사는 “기술이 교육 질 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며 AIDT를 칭찬했다.
#2.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함송이 교사는 초등 4학년 수업에 지난달 활용했던 AIDT를 이젠 쓰지 않는다. 학생들이 토론을 거쳐 종이책으로 돌아가자고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함 교사는 “AIDT 수업에선 위기가 ‘초 단위’로 찾아왔다”고 말했다. 학생 1명은 인터넷 연결이 안 돼 기기를 교체했고, 다른 4명은 펜 입력 오류를 겪었다. 몰래 게임을 하다 들키는 학생, 로그인을 못 해 애먹는 학생도 이어졌다. 함 교사는 “AIDT가 정말 학습 효과가 좋았다면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쓰지 않겠냐”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AIDT가 학교에 도입된 지 석 달이 지났다. AIDT를 써 본 교사 사이에선 “교실 혁명의 가능성을 봤다”, “당장은 제대로 쓸 수 없는 물건”이란 상반된 평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AIDT의 교과서 지위를 박탈하는 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던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으로 AIDT가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면 백지화 대신 학교에 선택권을 주면서 점진적으로 개선하자”는 의견을 밝혔다.
“맞춤형 문제로 학생들이 달라져” vs “AI 기능 수준 이하”

중앙일보 취재 결과 AIDT에 대한 교사들의 만족도는 수업 과목, 학생 연령 등에 따라 달랐다. 수준별 문제 풀이가 중요한 수학 과목, 컴퓨터 실습이 필수인 정보 과목 교사들은 대체로 후한 평가다. 초등 4학년 수학 수업에 활용한 서울의 한 교사는 “문제를 빨리 푸는 상위권 학생은 수업 중 AIDT가 낸 문제를 풀며 남는 시간 없이 공부하고, 하위권은 개념을 응용한 게임이나 아바타 꾸미기에 흥미를 느껴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서울 일반고의 한 정보 교사는 “수업도, 과제 제출도 다 한 플랫폼에서 이뤄지니 잡무가 상당히 줄었다”고 전했다.
반면 교육부가 홍보했던 만큼 수업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특히 AIDT에 탑재된 AI 수준이 챗GPT 등 기존의 생성형 AI보다 뒤처진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서울의 한 중학교 영어 교사는 “AI봇이 한글을 인식 못 해 ‘비빔밥’을 치면 ‘Bi-bim bob’ 대신 빈칸으로 뜬다. 답이 하나인 수학과 달리 남과 다른 문장, 단어를 쓰는 것도 중요한 영어에선 활용하기 힘들다”고 했다. 대구의 한 초등 교사는 “AI봇에게 ‘500개’라고 치면 ‘500dog’로 번역되고, 수학은 스마트펜으로 쓴 숫자가 인식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디지털 기기에 대한 숙련도가 낮은 초등학생들에겐 AIDT 사용의 장벽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복수의 교사들은 “이제 막 정규 수업에서 알파벳을 배우는 초등 3학년 학생들에게는 AIDT 접속을 위해 영어로 ID, 비밀번호를 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도입 전부터 디지털 과몰입 등을 우려했던 부모의 거부감은 그다지 누그러지지 않았다. 경기 부천의 초4 학부모 김모씨는 “수업에서 AIDT를 쓴 뒤부터 ‘태블릿PC를 달라’고 떼쓰는 일이 잦아졌다”고 말했다. 초3 학부모 이모씨는 “주로 (AIDT의) 영상으로 선생님 설명을 대체하는 식의 수업이 많다고 한다. 종이책보다 수업 참여도가 떨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무리한 추진 일정…AI 향상, 학교 적응 시간 부족"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추진 일정이 AIDT의 잠재력을 제대로 못 살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AIDT의 도입 일정은 학교 보급(2025년 1학기)이 2년도 남지 않았던 2023년 6월에야 확정됐다. 출판사들이 교과서 개발에 투자할 수 있던 시간은 1년 남짓에 그쳤고, 학교·교사들은 선정 직전인 지난해 12월에야 실물을 볼 수 있었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AIDT가 뭔지 알지 못한 상태”(영어 AIDT 집필 교사)였단 얘기다. 야당과 교원단체의 반대, 학부모의 거부감에 고민하던 교육부는 결국 초등 3·4학년, 중1, 고1을 대상으로 전면 도입한다는 계획에서 학교가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형태로 물러섰다.
AIDT의 교과서 지위 박탈을 공언했던 이재명 정부의 출범에 AIDT를 선택한 학교는 혼란에 빠져있다. 일정 상 이달 말까지 각 교육청은 학교로부터 2학기 구독 신청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AIDT 채택률이 가장 높은 대구시교육청조차 “교육부 방침이 정해져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이다. AIDT가 교육자료가 되면 교부금 상 예산 지원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수백억 원을 들여 AIDT 개발에 투자했던 출판사들은 교육부가 약속을 어겼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언젠가 가야할 길…백지화 대신 개선·발전을"

전문가들은 AIDT를 전면 백지화하는 대신 교과서든 교육자료든 선택권을 학교에 주되, 실제 겪은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학년·과목을 조정하고 AI의 질을 높이자고 제안했다. 김용 한국교원대 교수는 “AIDT는 수학의 연산 훈련, 영어 회화 훈련 등에 학습 효과가 높다고 평가된다”며 “지금처럼 선택권을 학교에 주고 보충자료로서 개발을 지속해야 한다”고 했다.
여승현 대구교대 교수도 “마냥 (도입을) 늦춘다고 AIDT가 좋아지는 건 아니다. 희망 학교를 중심으로 수업 모델을 개발하고 효과성을 검증하는 식으로 정책을 보완·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영식 전주교대 교수는 “지금은 현장에 완전히 정착된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도 2000년대 초 도입 당시엔 교사, 교원단체의 반대가 거셌다"며 “새로운 교수 학습법을 무조건 거부하다간 장차 우리나라 교육만 뒤처지는 결과를 나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민지.이보람(choi.minji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