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에세이 출간한 장류진…"다음 작품도 '지금 여기' 2030 이야기"

2025-02-25

19일 출간된 소설가 장류진(39)의 첫 에세이집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은 지난해 여름 그가 밀리의서재에 연재한 단짝 친구와의 핀란드 여행기를 묶은 단행본이다. 두 친구가 함께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도시 쿠오피오, 단편소설 '탐페레 공항'의 배경인 탐페레, 수도 헬싱키를 돌아보는 여정을 사진작가 정멜멜이 찍은 핀란드 풍경과 함께 416쪽 분량의 책에 담았다.

책은 언뜻 핀란드 여행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장류진은 교환학생으로 핀란드에 살았던 2008년과 현재를 부지런히 오가며 일과 나의 관계, 친구와 친구의 관계,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곱씹는다.

지난 20일 장류진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산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열면 소설이 나옵니다.

맨 앞에 2021년에 쓴 엽편 소설(단편보다 짧은 소설) '치유의 감자'를 실었어요. 2008년 핀란드 교환학생 시절을 배경으로 쓴 소설인데요. 그 소설이 언제 책으로 나오냐는 문의가 많았어요. 그런데 짧은 소설 하나로 단행본을 만들 수 없잖아요. 언젠가 책에 이 소설을 넣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핀란드 여행기를 내면서 책에 싣게 됐죠.

에세이 출판을 염두에 두고 여행을 갔나요.

책을 쓰려고 간 여행은 아니었어요. 친구랑 시간이 맞고 기회가 돼서 가게 됐죠. 교환학생으로 살았던 곳을 돌아보면서 과거를 떠올리게 되잖아요. 그 이후 15년이란 세월을 거치며 제가 큰 변화를 겪었거든요. 그때는 소설가로 살겠다는 상상 같은 건 해본 적도 없어요. 이 변화를 정리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나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구나 생각하게 됐죠.

그림처럼 그려지는 섬세한 풍경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그때그때 메모를 했나요.

메모는 전혀 못 했어요. 빽빽한 일정이라 숙소에 돌아오면 바로 쓰러졌거든요. 나중에 사진을 보고 친구에게 물어보고 기억을 더듬어서 썼죠. 실제 보고 겪은 것을 썼지만, 다큐멘터리는 아니잖아요. 아름답고 재밌는 이야기로 읽힐 수 있게 가공하는 과정도 거쳤습니다.

'하이퍼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현실 밀착형 소설을 써 왔습니다. 에세이 출간 제안이 많았을 텐데요.

맞아요. 그런데 저는 작가로서의 자아와 생활인으로서의 자아를 분리하고 싶었거든요. 제 이야기를 쓰는 게 두려웠어요.

실제로 써 보니 어땠나요.

부끄럽기도 하고 안 써지고…소설은 마음대로 쓰고 마음대로 바꿀 수 있잖아요. 상상으로 만들어 낸 인물 뒤에 숨을 수도 있고. 에세이는 아무리 가공하고 각색해도 기본적으로는 내 이야기여야 하니까… 훨씬 어려웠어요.

장류진은 판교의 한 IT 기업에서 10년 동안 서비스 기획자로 일했고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2018)이 나온 뒤에도 한동안 직장 생활을 병행했다. 그의 작품은 조직의 미묘한 역학관계와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다. '하이퍼 리얼리즘'의 선두주자라는 찬사와 '블라인드(직장인을 위한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소설'이라는 꼬리표가 동시에 따른 이유다.

이런 세평에 대한 그의 속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다. 가령 이런 대목이다.

"내가 쓴 소설은 '문학상'을 받으며 세상에 나왔고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지만, 한 온라인 서점에는 이 소설이 다름 아닌 '문학' 카테고리에 있다는 사실에 격노하는 한 줄 평이 여럿 올라와 있다. (...)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번 '문학'이라는 단어 앞에선 (...)어찌할 줄 모르겠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헬싱키 - 이야기가 걸어나가자, 그 자리에 햇살이 깃들었다' 중)

이 책에는 장류진이 몇 퍼센트나 들어갔을까요.

소설을 내고 그런 질문을 받으면 "딸기 우유에 딸기가 들어간 만큼"이라고 대답했거든요. 근데 딸기 우유에 딸기가 아예 안 들어가 있어요. 딸기가 들어가 있지 않지만 이름은 '딸기 우유'이고 색깔이 딸기 색깔이지 않나. 딱 그 정도라고 말씀을 드렸죠. 에세이는 생과일주스 느낌이랄까. (웃음)

결국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저도 인생의 절반이라면 절반 정도를 살았잖아요. 이 정도 되니까 지금 내 곁에 있는 친구, 그 친구와 함께한 시간이 제 삶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저한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진짜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는 친구가 있잖아요. 그런 사람과의 관계와 추억이 참 귀하다는 느낌을 받죠.

『일의 기쁨과 슬픔』에 수록된 단편 '탐페레 공항'의 배경, 탐페레를 가셨죠. 이곳에서 그 '이야기'에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넸고요.

회사 일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도 비슷하거나 똑같은 결과가 나오잖아요. 소설은 내가 백지에 써서 이 녀석이 세상에 나오는 일이니까…, 그렇게 만든 작품이 독자들을 만나면 내 손을 영영 떠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발이 달린 것처럼. 다른 곳도 아닌 발상지에 도착했으니 잘 떠나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탐페레 공항'에 대해 "수많은 신춘문예와 공모전에 냈지만 모두 미끄러진" 작품이라고 쓰셨죠.

맞아요. 누더기가 되도록 고치고 고쳐도 최종심에서 언급된 적도 없는 작품이고, 아픈 손가락이었죠. 그런데 책을 내고 나서는 반응이 좋았어요. 그 책에서 '탐페레 공항'이 제일 좋았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도 많았고요. 그런 말씀이 참 뭉클했고… 살면서 허투루 하는 경험은 없구나. 언제 어디에서든 다시 쓰임이 생기는구나, 생각하게 됐죠.

차기작도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2030의 이야기가 될까요.

맞아요. 저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핍진하게 쓰는 게 좋아요. 읽을 땐 다양하게 읽지만 쓸 때는 역시 리얼리즘에 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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