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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콘서트홀 1열
아버지는 17세 된 딸을 데리고 다른 도시로 떠나버렸습니다. 딸에게 오는 모든 편지도 감시하고 말이죠. 이유가 뭘까요. 네, 짐작하기 쉽듯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 남자는 딸보다 9살이 많은 데다 불안정합니다. 일정한 기분을 유지하지 못하며, 경제관념이 없고 무엇보다 돈이 없습니다. 법대에 다니다 갑자기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하는데 그만 손가락 부상까지 입었습니다. 한편 딸은 지금 가장 잘나가는 신동 피아니스트입니다. 무려 괴테·멘델스존·리스트를 팬으로 거느린 피아니스트죠.
그런데 딸의 애인이 편지를 계속 보냅니다. 그걸 가로챈 아버지, 대신 답장을 보냅니다. “자꾸 접근하면 총으로 쏴버리겠어!”
이제 음악이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접근 금지당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환상곡입니다. 슈만은 클라라 비크가 아버지에게 끌려 드레스덴으로 떠나자 라이프치히에 혼자 남아 환상곡의 초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다음 시즌의 주요 연주곡으로 결정한 그 음악입니다. 임윤찬은 2026년 카네기홀에서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과 함께 슈만의 환상곡 연주를 예고했습니다. 이번 회에는 애틋한 사랑이 있는 슈만의 환상곡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공연 전 예습을 위해 찾아보시면, 아마 여러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베토벤 서거 10주기(1837년)의 기념비 건립 비용을 위해 슈만이 제출한 곡. 독특한 구조로 전개되는 3개 악장. 이것은 소나타인가, 환상곡인가에 대한 논의. 슈만이 각 악장에 붙인 제목이 ‘폐허’ ‘승리’ ‘빛나는 왕관’이라는 것까지 말이죠.
콘서트홀 1열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바로 음 하나에 주목하려 합니다. 임윤찬이 이 곡 연주를 예고했을 때, 가장 궁금한 건 바로 ‘그 음’을 연주할지 여부였기 때문입니다. 기대하는 음은 ‘도레미파’ 중 ‘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