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콜이야? 한숨을 후회했다…왈가닥 그녀가 떠나간 순간

2025-03-04

병실 불이 모두 꺼진, 밤 열한 시 반.

유니폼에 매달아 둔 플래시 불빛에 의존해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나이트 정규 라운딩을 돌고 있었다.

40대 초반의 여자 환자의 혈압을 측정하려는데 그녀가 말을 건넸다.

"많이 성숙해지셨네요."

"저를 기억하세요?"

그녀는 몇 년 전 항암 치료를 받을 당시, 당신을 간호했던 나를 기억한다고 했다.

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녀를 잊을 수 있겠는가.

신입 간호사 시절, 항암 치료를 위해 한 달 간격으로 입원했던 환자다. 짧은 커트 머리, 새하얀 피부에 까만 뿔테 안경을 썼던 그녀는 암병동의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활력이 넘쳤다. 왈가닥 소녀처럼 톡톡 튄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반복적인 항암 치료로 힘들다거나 아프다는 이야기조차 기운 없이 하는 법이 없었다. 도움을 받고 나면 명랑한 목소리로 인사해주었다.

"땡큐, 진짜 고마워요!"

나는 모든 것이 서툴렀던, 경직된 신입 간호사에 불과했다. 그런 나를 바라봐 주는 그녀의 눈빛에는 항상 친근함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옆에 머물렀다 떠날 때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던 기억이 났다. 간호사와 환자 사이지만 알게 모르게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았던 것이다.

그 이후로 한참 동안 볼 수 없었던 그녀가 아주 오랜만에 입원을 한 것이다.

"저, 많이 안 좋아졌죠?"

기억 속의 씩씩한 에너지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슴푸레한 불빛 아래 그녀는 무척 차분했고 말투도 담담했다. 커트 머리에 뿔테 안경은 변함없었지만, 얼굴은 훨씬 야위어 있었다.

다행히도 입원 후 며칠 동안은 기력을 유지하는 듯 보였다. 남편에게 직접 사과를 깎아주기도 하고 간병인과 친구처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숨길 수 없는 명랑함이 한 번씩, 느껴졌다.

그러나 상태는 호전될 기미 없이 점점 악화했다. 더는 투약 가능한 항암제가 없었다.

사실 이번 입원은 치료를 위한 게 아니었다. 불편한 증상을 줄여 삶의 질을 조금이나마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통증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하게 그녀를 괴롭혔다. 마약성 진통제 투약 간격도 점차 짧아져 갔다. 경험적으로 이제는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혈액검사 결과 체내 전해질의 균형이 완전히 깨져있었다. 높은 칼륨 수치를 낮추기 위해 약물을 항문으로 주입하는 배출 관장이 반복적으로 시행되었다. 오심, 구토 등의 증상 또한 쉴 새 없이 그녀를 괴롭혔다.

며칠 사이에 그녀는 소위 간호사들 언어로 '손이 많이 가는 환자'가 되어 있었다.

원래 하얗던 그녀의 얼굴이 이제 새하얗게 질려갔다. 관장과 피검사, 심전도검사 등 반복되는 처치에 이골이 난 그녀는 힘들어서 미쳐버릴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제발 그만 하라며 점점 더 예민해져 갔다. 결국 진통제와 구토 방지제를 제외한 모든 처치와 투약을 거부했다.

안타깝게도 그녀에게 좀 더 마음을 써주거나 감정을 살펴 줄 여유가 당시로썬 없었다. 신입 간호사 시절과 달리 업무는 꽤 능숙해진 상태였지만 하필 위독한 중환자가 많은 시기였다. 밥 먹을 틈을 내기도 힘들 만큼 바쁜 업무가 몇 날 며칠 지속되어가자 나 또한 점점 지치고 있었다. 그녀가 '손이 많이 가는 환자'라는 것이 꽤 부담스러웠다.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따라 그녀의 통증이 유독 안 잡히는 듯했다. 진통제를 투약하고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반복해서 간호사를 찾는 콜 벨이 울렸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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