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칭 “명백한 돌팔이”가 쓴 “돌팔이 일지”다. 오랫동안 일지를 쓰다 보니 결국 당초 목표처럼 “돌팔이에서 탈출”했다. 그는 “돌팔이라는 말은 내가 ‘처음’ 어느 자리에 있었는지를 상기시켜주는 말”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고 무르팍 전문의 김진구 명지병원 의료원장이 최근 발간한 메디컬 에세이 ‘수술실에서 보낸 3만 시간’ 서문에서 쓴 표현들이다. 젊을 때 머리에 가득 찬 의학 지식을 믿고 의사의 길로 들어선 저자가 숱한 좌충우돌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작금의 당당하고 어엿한 ‘의사’가 된 사연들이 소개됐다. 모자란 실력과 의사로서 책임감을 절감하면서 싸운 3만 시간이 저자를 시간을 앞지르는 ‘명의’로, 환자와 체온을 나누는 ‘따뜻한 의사’로 만들었다.
“이 할머니가 주는 돈은 잘 보관했다가 나처럼 아픈 할머니가 돈없다 하면 이 돈으로 수술해줘”라며 내민 촌지, “실력이 모자랄 수는 있지만,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여 우를 범하지 않겠습니다”라며 환자와 한 약속, 신체 기증자로부터 느낀 “피와 장기는 누군가 내어주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는 가슴 먹먹한 말씀, “하루 세 번 이상 샤워하라. 마지막 샤워만이 나를 위한 것일뿐”이라는 노 교수의 묵직한 당부, 자칭 “똥손”일 때부터 빼곡하게 써내려가면서 정리한 Dr Kim’s note, 이상화·김연경·김아랑·설기현 등을 치료하면서 갑절로 되돌려받은 감동…. 그 모든 게 메스, 핀셋, 가위, 겸자, 주사처럼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게 담긴 책이다.
그는 선배 의사로서 의사를 꿈꾸는 후배에게 말한다.
“의사라는 타이틀을 다는 순간, 머리 위에 칼이 놓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패를 받아들이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마라.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면 동정이 아니라 공감을 하라. ‘진실한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계속 던져라, 명의가 되는 왕도는 없다.”

저자는 ‘EIM(Exercise Is Medicine·운동은 약이다)’라는 글로벌 캠페인을 한국에 처음 소개한 주인공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운동이 약”이라는 말은 무르팍 의사로서 최고 슬로건이 됐다. 저자는 환자들에게 “운동하세요. 자전거를 타세요”라고 귀에 못박이도록 잔소리한다. 기자는 저자를 2018년 5월 처음 만났다. 그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건강해지는 것은 의사와 정부 간 수가 계약으로만은 안 된다. 많은 사회적 재원이 환자를 중심으로 모여야 한다. 민간, 환자, 정부, 의료진, 지자체 등이 하나가 돼 환자를 운동하게 만들어야 비로소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19세기 위대한 병리학자이자 사회의학자인 루돌프 피르호가 <가장 평범한 아픔>에서 쓴 ‘의학은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대규모 의학이나 다름없다’라는 문구. 김진구 원장도 그렇게 살아왔다.
<꿈의지도> 발간. 240쪽.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