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집회 준비한 ‘난세의 파티플래너’ 카뱅 심규협 선생

2025-04-14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며 광장에 나와 본 이들은 이제 이 이름을 기억한다. ‘카카오뱅크’로 시작하는 후원 계좌 안내에 나오는 ‘심규협’이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의 살림을 맡은 심규협 사무국장(36)은 이렇게 의도치 않게 이름을 알렸다. 또 후원 창구로 소개되면서 탄핵 광장을 상징하는 주인공 중 한 명이 됐다.

이름이 ‘협’으로 끝나니 ‘심판·규탄·협회’의 줄임말인 줄 알았다는 시민도 있었다. “정의로운 ‘대협‘(大俠) 느낌”이 난다며 별호(別號)처럼 ‘카뱅 심규협 선생’이라고도 부르는 이도 있다. 비상행동에 후원하는 일은 ‘심규협님께 잔잔한 파도를 남기다’거나 ‘심규협했다’고 표현되기도 했다. 축제 같은 탄핵 촉구 집회 분위기 덕에 ‘난세의 파티 플래너’라는 별명도 생겼다.

비상계엄 이후 서울에서 열린 60여 차례의 집회에 그가 있었다. 123일 동안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하루도 쉬지 못했다. 주말 집회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 꼬박 한 주를 모조리 써야 헸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날이었잖아요. 체포가 무산되고, 구속이 취소되고. 선고가 지연되니 집회를 계속해야 했으니까요.”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한 지난 4일에도 그는 헌재와 가까운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 집회 현장에 있었다. 심 국장과 사무국 직원들은 전날부터 이어진 철야 농성을 마친 뒤 탄핵인용에 대한 기대감으로 다시 광장에 자리 잡았다 .

오전 11시,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선고가 시작되자 광장은 시민들로 가득 찼다. 심 국장은 대형 스크린에 틀어놓은 뉴스 화면으로 시선을 돌릴 틈이 없었다. 귓가에서 문형배 헌재소장 직무대행의 선고 이유 낭독이 계속될 때도 그는 화면을 보지 못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그토록 바라던 한 문장. 그 순간에도 심 국장은 화면 대신 집회 현장을 바라봤다. 순간 맞은 편에 선 동료 활동가와 눈이 마주쳤고 눈물이 흘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123일, 그리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1060일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비상계엄 이전부터 한국진보연대·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전국민중행동 등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해온 그에게 윤 전 대통령의 임기는 광장에서 투쟁하며 보낸 시간과 겹쳤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노동자·농민분들과 거리에서 투쟁하면서 거부당하고 조롱당했던 시간이 떠오르니 먹먹했어요. 들뜬 마음보다는 좀 복잡한 감정이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지만 그가 동료들과 만들어가는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헌재가 파면을 선고한 날에도 심 국장은 농성장 뒷정리를 한 뒤 다음날 이어질 집회를 준비했다. 비상행동은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으로 이름을 바꿔 활동을 이어간다.

“윤 전 대통령만 파면되었을 뿐 내란에 관여한 이들이 처벌받거나 진상이 모두 드러난 것은 아니잖아요. 또 윤석열 정권에서 거부된 민생 개혁 법안 등 사회 개혁을 위해 남은 과제들이 아직 많습니다.”

평범한 30대 청년 심 국장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만들거나,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등 소박한 꿈을 꾼다. 하지만 한 시민이 그에게 전한 말을 잊을 수 없어 다시 광장으로 나온다.

“심규협씨 보고 있지. 우리는 당신 절대 잊지 않아. 투쟁 현장에서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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