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아내도, 음악도 끊겼다…“산 채로 묻혔다” 슈만의 비극

2025-07-24

김호정의 더클래식 in 유럽

“아마 이 방이었을 거예요.”

데스크 뒤에 앉아 있던 직원이 일어나 한쪽으로 향했다. 따라가 보니 북서쪽 끝의 창 쪽이다. “아마 여기에서 세상을 떠났을 거예요.” 이곳은 170년쯤 전에 정신과 병동이었다.

독일 서쪽의 도시인 본(Bonn) 인근의 엔데니히. 여기에 1800년대의 정신과 의사인 프란츠 리하르츠가 요양원 겸 병원을 세웠다.

19세기 낭만주의 최고의 작곡가인 로베르트 슈만이 여기에서 1856년 7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건물 밖에서 바라봤을 때 1층의 맨 왼쪽이 그의 방이었다.

“기록에는 부인인 클라라가 창밖에서 그를 봤다고 돼 있어요. 그러니 아마 1층 이쯤이었을 거예요. 또 정신이 불안한 사람에게 높은 방을 주진 않았을 테니까요.”

그 공간을 가리키던 직원이 확인하듯 덧붙였다. “그가 방에서 혼자 죽었다는 건 알고 계시죠?”

슈만의 죽음을 따라가는 투어를 했다. ‘트로이메라이’ 같은 아름다운 음악으로 잘 알려졌지만, 그의 죽음은 클래식 음악사상 가장 비극적이었다.

여정은 또 다른 도시인 뒤셀도르프에서 시작됐다. 지금도 힘 있게 흐르는 라인 강 위에서. 슈만은 다리 위에 올라갔고 강에 뛰어들었다. 이 자살 시도를 하기 전부터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위한 짐을 싸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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