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
삼성이 2월 말부터 3월까지 실시했던 임원 대상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 세미나에서 나온 이재용 회장 메시지다.
삼성은 '사즉생' 메시지를 핵심 경영 기조로 받아들였다.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는 따끔한 이 회장의 질책은 삼성 전 계열사에서 위기 돌파와 성과 향상으로 이어졌다.
◇사법 족쇄 벗고 종횡무진…달라진 '뉴 삼성' 기대감
이 회장이 2022년 10월 27일 취임한 후 보여온 '뉴 삼성' 행보는 거창한 선언보다 가시적 성과를 내는 데 집중됐다. 글로벌 고객과 협력사의 핵심 경영진,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할 주요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새로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물꼬를 트는 데 집중했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회계부정·부당합병 의혹이 불거진 후 10년 만에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탈피하며 이 회장은 거침없는 글로벌 행보를 잇고 있다.
특히 핵심 사업인 반도체 사업이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엔비디아·퀄컴·오픈AI 등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술 리더들과 파트너십을 돈독히 한 것은 사업 회복에 속도를 내고 경쟁력을 높이는 데 영향을 끼쳤다.
부진했던 반도체 사업이 재도약 가능성을 보이면서 불과 1년 만에 삼성전자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 회장 취임 2주년 당시 반도체 사업의 깊은 침체로 인해 핵심 경영진에 대한 인적 쇄신과 조직문화 개선에 대한 지적이 빗발친 것과 대조된다.
반도체 사업 위기를 일으켰던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에서 이익폭이 향상되고 파운드리 고객사와 수주물량이 늘면서 반도체 사업의 명성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아직 HBM4에 대한 엔비디아 공급자 지위 여부가 확정되지 않아 리스크가 있지만 1위 반도체 사업자로 올라선 SK하이닉스와의 기술 격차를 상당폭 줄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사업 회복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3분기 사상 첫 분기 매출 80조원을 돌파한 86조원, 영업이익은 10조원대를 회복해 3년 만에 최대 이익을 기록했다. 반도체 사업 회복을 위해 임직원이 절치부심한 가운데 최전선에는 가시 성과를 내기 위한 이 회장의 글로벌 행보가 있었다.
이 회장은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난 직후 미국 '선밸리 컨퍼런스'에 참석해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빌게이츠 등 글로벌 핵심 빅테크 경영진과 회동했다.
'억만장자의 여름 캠프'로 불리는 선밸리 컨퍼런스는 기술·금융 등에 걸쳐 소수의 초청받은 글로벌 기업인들만 참석해 친목을 다지고 사업 파트너로 관계를 발전시키며 글로벌 산업 지형도를 재편해 나가는 핵심 무대다.
선밸리 컨퍼런스 이후 삼성전자는 잇달아 수주 낭보를 울렸다. 파운드리 사업에서 테슬라로부터 23조원 규모 물량을 수주했고 애플과는 삼성 오스틴 공장에서 차세대 칩 생산을 협업하기로 했다. 오픈AI와는 파트너십을 맺고 미국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대한 협업을 가시화했다.
인수합병(M&A)으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기존 사업 강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에 진입하는 시도도 성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5월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사업부를 3억5000만달러(약 5000억원)에 인수하며 하만의 전장사업을 강화했다. 같은 달에는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인 독일 플랙트그룹을 15억유로(약 2조4000억원)에 인수하며 급성장하는 AI 데이터센터 공조 시장 대응 채비에 속도를 냈다.
7월에는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젤스를 인수해 갤럭시 디바이스를 중심으로 한 커넥티드 케어 서비스 준비에도 나섰다. 미국에서 건강관리와 질병 예방 중심의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여기서 쌓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여러 국가로 서비스를 확대할 전망이다.
◇남은 숙제는 반도체·AI·로봇 경쟁력 확보
삼성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바이오 사업에서 올해 성장 체계를 마련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인적 분할해 위탁개발생산(CDMO) 글로벌 톱티어 도약에 집중하도록 했다. 순수 지주사인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신설해 바이오시밀러 개발·상업화를 담당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100%를 승계함으로써 CDMO 사업과 바이오시밀러 사업 경쟁력을 각각 강화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핵심 사업인 반도체는 경쟁사 대비 확실한 기술 우위를 탈환하는 게 과제다. 중단기 반도체 사업 행보를 좌우할 HBM4는 물론 이후에 이어질 HBM 기술 로드맵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따라 실적이 갈릴 전망이다.
AI·로봇 등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분야에서 기술 우위와 가시 성과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특히 중국이 글로벌 무대를 장악한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는 빠른 추격과 과감한 투자가 숙제다. 지난해 12월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인수하고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한 이후 중장기 기술·사업화 로드맵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강태수 KAIST 교수(전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재용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난 지금, 조직원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초격차'라는 구호 대신 더 세심하고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사법 리스크 등 제약이 사라진 지금이야말로 선대 회장들이 보여줬던 획기적인 모멘텀을 이재용 회장 스스로가 보여주며 진검 승부를 할 때”라고 말했다.
3분기를 기점으로 올해와 내년에 걸친 실적 성장세를 확인한 만큼 내달 단행할 정기인사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단행한 인사에서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택한 바 있다. 위기가 클수록 변화를 최소화하고 위기 극복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에서다.
올해도 큰 폭의 물갈이나 대대적인 조직 쇄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삼성 안팎의 중론이다. 현 핵심 경영진들이 지난해 불거진 '삼성 위기론'을 돌파해냈고 아직 반도체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7일 취임 3주년을 맞은 이 회장은 별도 메시지 없이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28일부터 3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APEC CEO 서밋에서 주요 국내외 기업 관계자는 물론 국내외 정상들과 회동한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임중권 기자 lim918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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