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110주년…미공개 회의록으로 본 ‘위기극복 리더십’ 〈5·끝〉

1990년대 말 과잉투자와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시대가 끝났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기업들이 사라졌다. 기업들은 생존을 건 사투를 벌였고 그중 일부는 질주했다. 세계적 기업들도 나왔다.
세계경제 순위에서 대한민국이 베네수엘라를 제쳤다는 게 뉴스이던 1980년대 초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시선은 어디까지 이르렀을까.

“앞으로는 삼성, 그 다음 럭키금성(현 LG)이 가장 크게 발전할 거로 보인다. 개발 투자에 제일 적극적이다. 대우는 눈에 띄는 개발 투자가 없으니 미지수인데, 삼성하고 금성은 고도 기술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 우리는 개발 투자에 너무 소홀한 감이 있다.”
“삼성처럼 전면적인 인사이동도 고려 중이다. 삼성은 사람보다 조직의 힘으로 움직인다. 사장이 누가 되든 조직이 굴러가고, 새로운 사장이 와도 일이 돌아가는데, 우리는 상무, 이사급도 거의 고정이라 유연성이 없다. 이것이 배움의 기회를 막고 있다.”

1984년 11월 26일 사장단 회의 발언이다. 당시 현대는 재계 부동의 1위였다. 2001년 정 회장 작고 이후 현대가 분할되고 삼성이 반도체 투자에 성공하기 전이었다. 정 회장은 경쟁 기업에서 배울 건 배우자는 취지였지만 삼성·LG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드러내곤 했다. 정 회장은 이런 말도 했다.
“박영우 사장, 지금 수치를 보면 우리하고 대우만 수출 증가율이 침체되어 있잖아? 럭키금성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출이 10억 달러도 안 됐는데 올해는 12억~13억 달러야. 미국에 컬러TV 공장 내고, 내수제품은 접었는데, 참 잘했다. 이제는 그룹 매출에서도 4대 그룹에 들어갔다.”
이때만이 아니었다. “삼성과 럭키금성이 가장 바람직한 성장이다. 전자제품 중심이다. 미국에 공장을 세워 대부분을 현지에서 조립하는데, 매우 바람직하다.”(1985년 1월 14일)
전두환 정권에 “후진국형 경제” 공개 비판

선경(현 SK)도 눈여겨봤다. 5개월 뒤 사장단 회의에서 “럭키금성이 이제 종합상사 4위가 됐다. 그 다음 성장할 곳은 선경”이라고 했다. 선경은 1980년 석유공사를 인수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뿐이다. 1984년 수출액이 쌍용(10억8600만 달러)·국제상사(7억9200만 달러)에 밀려 10위권에 겨우 턱걸이하던 때였다. 하지만, 정 회장은 “쌍용은 타사 제품 위주로 취급하고 자사 제품이 없어 약세로 전환될 것”이라며 “현대·삼성·대우·럭키금성 앞으로 선경 순으로 우리나라 수출 실적이 이어질 거다. 이 순서가 향후 4~5년간 유지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예견대로 됐다.
당시 재계 3위인 대우에 대해선 그러나 평가가 높지 않았다. 1980년 전두환 정부가 추진한 산업합리화 정책으로 발전설비 분야를 대우에 양보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시각을 드러냈다. 정 회장은 “정부 관계자가 ‘김우중 대우 회장은 순순히 찬성하는데, 왜 반대하냐’고 해서, 김 회장이 사업을 해온 과정과 우리는 다르다. 현대는 땅을 사서, 길을 닦고, 말뚝을 박아가며 밤낮으로 애를 써 공장을 짓고 운영을 해왔다. 반면 김 회장은 지금까지 자기가 직접 공장을 지은 일이 없다. 서울역 앞 건물도 정부가 하던 것을 산업은행을 통해 수의계약으로 따낸 거다. 자동차회사도 원래 신진자동차 김창원씨가 하던 것을 대우가 정부를 끼고 수의계약으로 넘겨받은 거다. 대우는 어느 하나 자기 손으로 시작한 게 없다고 말했다”(1987년 1월 12일 사우지 인터뷰)고 회고했다.
1984년엔 “대우가 수출을 줄인건 실적 위주의 정책 변화라고 보면 된다. 손해나는 일은 안 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내년에 수입대체 산업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정부의 국제수지 개선에 협조하려면 수입대체 산업과 수출산업, 두쪽 다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정 회장은 공개적인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의 잣대로도 상당히 솔직한 비판을, 전두환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자주 했다. 정부가 기업이나 경제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걸 ‘후진국형 경제’라고 칭하며 민간주도 경제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으로서 소명으로 여긴 듯하다. 그는 1977년부터 10년 간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1982년 6월 14일 경제기획원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선 “몇 년 전 세계은행의 한 전문가가 ‘한국은 각종 정부위원회에 관민이 함께 참여하는데, 정책 수립에 민간기업 의견이 잘 반영되는 모범 사례’라며 나의 견해를 물어 꽤 당혹스러웠다”며 “우리나라에는 부처별로 수많은 위원회가 있고, 대부분 정부 관계자와 일부 기업, 다수의 어용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몇 가지 형식적인 질의응답과 짧은 간담회 후 대부분 원안대로 통과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기업의 일차적 사명은 고용·세원 확대”

1985년 6월 14일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의 중앙위원 특강에서는 “선거에서 국민의 표를 얻기 위해 사회 윤리가 지나치게 고조되면서 경제는 자연스럽게 위축된다. 기업 활동을 죄악시하게 되고 이는 기업의 의욕을 꺾어 결국 경제 침체로 이어진다. 국민의 목표는 생활의 번영과 사회의 안정이지, 정치 활성화가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반대기업’ 정서를 업고 30대 기업 여신 동결 등을 추진하거나 기업인들에 대한 수사를 벌이는 데 대해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부도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은 선진국엔 없는 일”이라고 했다.
1983년 11월 11일 언론사 특강에선 “국회가 기업의 채무를 공개하자는데, 단순히 ‘부채가 얼마다’가 아니라, 그 부채가 얼마나 국민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지, 고용을 얼마나 창출하고 있는지 같은 통계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 그 빚이 무엇을 위해 쓰였는지,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가 중요하다. 해외 은행들은 그런 걸 더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기업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여는 고용과 국부 증가라고 봤다. 그는 “기업의 이윤을 사회 환원해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런 시각엔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기업인의 1차적 사명은 기업을 성장시키고 고용을 늘리며, 국가의 세원을 확대하는 것이다. 기업을 계속 성장시켜 기술 발전과 고용 증대, 세원 확대를 지속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 기여이자 국가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한다.”
정주영은 ‘현대’ 한국 기반 일군 고마운 사람

곰팡이가 잔뜩 낀 누런 표지 속 원고지에는 수기(手記)로 된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표지 위에는 ‘1984년 3월 23일 기획원 주체 경제 각 부처 연수 교육 특강’, 1982년 4월 19일 고졸·전문대졸 신입사원 특강, ‘1983년 1월 10일 종합상사 영업회의’, ‘1984년 7월 2일 사장단 회의’ 같은 라벨이 붙여져 있다. 지금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정주영 비록(秘錄)’이다.
20일 찾아간 경기 파주시 김명호 교수의 연구실은 이런 자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김 교수는 “A4 용지로 4200쪽가량이다. 책 12권 분량”이라며 “중요한 내용을 추려 다음 달 25일 정 회장의 탄신 110주년에 맞춰 출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과는 어떤 인연인가.
“1990년대 정 회장이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에 작업복 차림으로 서 있는 사진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때마침 사진을 통해 인물의 생애를 반추하는 특별한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는데,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사진을 본 순간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왔다. 그래서 정 회장 측에 구상을 말했고 미공개 사진을 비롯해 다양한 자료를 접할 수 있게 됐다. 그 자료들을 책으로 냈고, 정 회장도 무척 흡족해 하셔서 1996년 중국, 1997년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출판기념회도 크게 열었다.”
자료가 방대하다.
“어떻게 이런 걸 다 기록해 보관했는지 참 대단하다. 워낙 방대해 지난해 봄부터 정리하는 데만 1년 6개월이 걸렸다.”
어떻게 확보하게 됐나.
“2001년 3월 21일 정 회장이 별세하셨고, 24일 빈소에 갔다. 마침 2000년 남북회담의 주역 송호경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방문하는 날이라서 부산했다. 빈소 옆 방에 작은 철제 캐비닛이 있었는데, 안에 버릴 짐들을 가져다 놨더라. 그걸 살펴보니 이게 있었다. 소장해야 할 것들이더라. 그래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에게 가서 ‘중요한 자료 같다’고 했더니, ‘그럼 잘 갖고 있어라’고 하시더라.”
정주영 회장은 어떤 사람인가.
“한국이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 폐허가 된 조국에 사명처럼 ‘현대’ 한국의 기반을 일궜다. 아니, 설명이 무의미하다. 그저, 떠올려보라. 정주영이 없는 한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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