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로 인건비 돌려막기 만연…"지원하되 성장지표 잘 살펴야"

2025-07-09

매년 최소 1조 5000억 원 규모의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중소기업의 운영비나 인건비에 쓰이는 등 ‘좀비기업’을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R&D 예산이 전문 인력 양성 후 매출 상승이라는 선순환을 그리지 못하고 한계기업의 생명 연장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정부가 R&D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연구 실적에 대한 평가 기준을 높이는 한편 기업별 예산 사용에 대한 사후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9일 서울경제신문과 플랫폼 더브이씨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정부 R&D 사업에 선정된 기업 중 민간투자 이력이 있는 3555곳의 연도별 고용 추이를 살펴보면 R&D 예산 지원이 종료된 시점 전후로 고용 감소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한 전직 국책연구기관 기관장은 “R&D 지원이 종료된 후 기존 직원을 그대로 유지하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라고 전했다.

기업 3555곳의 연도별 매출 추이도 2020년 8조 7000억 원에서 2024년 17조 6000억 원으로 두 배가량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기업 10곳 중 3곳은 매출이 감소했다. 상당수 정부 지원 사업은 연구비 수령액이 고스란히 매출액으로 반영됨에도 역성장을 한 것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조 원에 가까운 정부 예산이 투입됐지만 중소기업의 매출 실적으로 따라오지 않은 것이다. 관계부처 자료를 종합하면 중소기업 R&D 전체 예산 규모는 2024년 1조 4097억 원, 2025년 1조 5214억 원 등으로 한 해에 1조 5000억 원가량이 투입되고 있다.

이에 매년 1조 원을 넘어서는 정부 R&D 예산이 성장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 지원이 아닌 한계기업의 시장 퇴출 지연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 예산이 한계기업 지원에 집중되면 당장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을 구제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시장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정부의 한계기업 지원이 고용 유지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이 때문에 건강한 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막고 새로운 고용 창출에 투입되는 비용이 축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부 R&D 예산은 기업의 운영비나 단순 인력의 인건비에 사용되는 경우가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예산을 지원하는 입장에서 이를 검증해내기는 쉽지 않다. 정부 R&D 지원 사업을 받은 적이 있는 업계 관계자는 “전문 인력과 단순 인력의 인건비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전문 인력이라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연구 업무를 진행하는지 여부는 사실상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R&D 예산이 기업의 전문 인력 창출 등을 위해 지급되는 것과 달리 실질적으로 기업의 자금을 충당하는 역할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부실기업 지원을 막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기업 선발 과정에서 R&D 성과 실적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중소기업 R&D 예산 지원 기업 선정은 R&D 과제에 대한 기술성·사업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기업의 매출·고용 지표도 참고 자료로 활용되지만 향후 해당 사업의 파급 효과를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을 명료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반면 R&D 예산 지원이 이뤄지는 대학이나 출연연구기관의 경우에는 특허 기술 여부나 관련 논문 등을 통해 R&D 성과에 대한 평가를 측정하고 있다.

R&D 예산 지급 이후 각 기업의 예산 사용에 대한 철저한 사후 검증도 요구된다. 정부 R&D 예산에 대한 사후 관리는 중소기업정보기술진흥원을 통해 시행되고 있지만 R&D 예산의 효율성 증진을 이유로 갈수록 정부 예산에 대한 사용 요건이 완화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간접비·직접비 비율 등을 제외하고는 기업 내부에서 R&D 예산에 대한 전용이 가능하다. 다만 R&D 예산 사용 규정 등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기업들이 실질적인 필요에 맞게 사용하기 어려워 그 기준점을 잡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 같은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R&D 예산을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R&D 예산 확대 방침을 밝힌 만큼 성장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을 중점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중소기업의 고용·매출 지표 악화는 내수 경기 침체와 더불어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삭감의 여파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R&D 예산 삭감 기조로 인해 기업의 투자 의지가 위축됐다”며 “향후 중소기업 R&D에 지속적으로 지원한다는 시그널을 주며 기업의 성장 지표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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