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해외 투자 프로젝트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치솟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의 활발한 소비자 수요와 대규모 보조금 등을 기반으로 한 정부 인센티브가 해외 투자 증가세를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21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자사 계열의 데이터 제공업체 fDi마켓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미국을 향한 신규 외국인직접투자(FDI) 프로젝트 비중이 2023년 11.6%에서 2024년 11월 기준 14.3%로 늘었다고 밝혔다. 특히 해외 기업이 외국에 새로운 인프라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그린필드 투자에 대해 미국은 지난해 11월까지 1년 간 무려 21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유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fDi는 미국의 신규 그린필드 FDI 프로젝트의 추정 가치는 전년 대비 1000억 달러(약 144조 원) 이상 증가한 2270억 달러(약 327조 원)에 달했다고 추정했다.
반면 이 기간 중국은 400건 미만의 프로젝트를 확보해 사상 최저 규모에 근접했다. 중국이 2010년대 중반까지 10년 간 매년 1000개 이상의 그린필드 투자를 유치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유럽의 경제 강국 독일 역시 같은 기간 470건의 그린필드 투자를 유치해 1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1100건의 투자를 유치했던 것과 비교해도 반 토막이 났다. FT는 그린필드 투자 관련 데이터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20일부터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공개됐다고 밝혔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에 대한 해외 투자 증가의 원인으로 강력한 소비 수요와 막강한 정부 인센티브를 꼽았다. 옥스포드이코노믹스의 분석가인 이네스 맥피는 “미국은 점점 더 많은 글로벌 투자 프로젝트를 유치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곳보다 더 강력한 수요 전망과 훨씬 더 강한 생산성 향상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정책’이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있지만, 보호주의 정책 등으로 인해 ‘미국에 투자해야 할 이유’가 늘어날 것”이라며 “미국 예외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미국 시티은행의 수석 경제학자인 네이선 시트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칩스법(반도체 지원 및 과학법) 등의 영향으로 미국의 인공지능(AI) 혁신이 가속화된 점과 미국의 낮은 에너지 비용, 투자 인센티브 허브로서의 미국의 중요성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FDI 점유율이 낮아진 이유로는 ‘탈위험화’ 추세가 거론됐다. 미국·중국 간의 무역 긴장이 고조되는 등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면서 다국적 기업들이 공급망 위험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롬바르드오디어의 수석 경제학자인 새미 차르는 “글로벌 무역은 더욱 세분화되고 있으며, 공급망 확보가 게임의 핵심이 됐다”며 “직접 생산할 의도가 없는 재화에 대해서는 우방국으로 이전하는 ‘프렌드쇼어링’을, 헬스케어나 칩과 같은 전략 산업에 대해서는 ‘리쇼어링(자국 회귀)’을 선호하는 추세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이유로 유럽 FDI 점유율도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해 미국 내 FDI 프로젝트의 62%가 서유럽에서 이뤄져 2019년까지 10년 평균치의 58%보다 늘어났다는 점은 프렌드쇼어링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또 유럽의 경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대륙의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기업 투자 측면에서 매력도가 낮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추세 속에서 미국의 성장은 중국·유럽 등을 계속 앞지를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IMF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미국은 2025년 2.7% 성장할 것으로 관측돼 유로존(1% 성장)을 앞질렀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 등의 정책을 펼칠 경우 해외 투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단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투자 연구 책임자인 리처드 볼빈은 “트럼프 정책이 투자 인센티브나 경제 상황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런 관점에서 미국 투자에 대한 매력은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