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新 재벌 혼맥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님은 어릴 때부터 이병철 회장님(삼성 창업주)께 경영을 배우셨어요. 이 배움을 다시 딸인 정유경 신세계 회장에게 물려주셨고요. 이런 삼성가(家)와 다르게 LG는 여자에게 경영을 가르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지난해 봄 구지은 전 아워홈 부회장이 털어놓은 얘기다. 그의 목소리엔 안타까움이 묻어 났다. 기업마다 여성의 경영 참여에 대한 견해가 다르고, 후계 수업에도 차이가 있었다는 의미다.
구 전 부회장은 삼성가와 LG가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故) 구인회 LG 창업주가 할아버지, 고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외할아버지다. 그는 가부장 문화가 짙은 범(凡)LG가에서 ‘유리 천장’을 뚫고 급식업체 아워홈 경영을 맡았으나 오빠·언니와의 갈등 끝에 지난해 6월 물러나야 했다. 아워홈은 최근 한화그룹에 매각됐다. 현재 구 전 부회장은 회사 지분 20.67%만 보유한 상태. 어떻게 권토중래를 모색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금호석화 ‘한 지붕, 두 남매’ 후계 실험
재벌가 여성들이 ‘딸’과 ‘사모님’ 자리를 넘어 경영권 승계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딸과 사위가 경영 지휘봉을 잡은 대기업은 삼성이나 롯데, 동양 정도였다. 고 이양구 동양 창업주는 아들 없이 딸 둘을 뒀다. 최근엔 주력 계열사에서 C레벨(최상위 의사 결정권을 가진 임원) 이상의 직책을 맡아 방향타를 쥐는 것은 물론 사업 영토를 넓히는 역할도 맡고 있다. ‘남자는 주력, 여자는 비주력 계열사’라는 대물림 방식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아워홈처럼 남매간 분쟁에 휩싸이기도 한다.
딸들의 경영 무대 데뷔와 관련해 최근 재계에서 관심을 끄는 기업이 금호석유화학이다. 이른바 ‘한 지붕, 두 남매 경영’이다. 대개는 후계자 남매는 계열사나 근무지를 따로 배치하는 게 관례. 하지만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의 아들·딸인 박준경 사장과 박주형 부사장은 금호석화에 함께 근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