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또다시 국감의 주인공으로 기업인을 불러세운다. 이동통신 3사 최고경영자(CEO)가 모두 증인 명단에 올랐다. 연이은 해킹으로 인한 보안 문제를 따지겠다는 명분이지만 실제 국감장에서 벌어질 장면은 이미 예견된다. 호통과 윽박, 사퇴 요구다. 정책 점검 대신 망신주기가 되풀이되는 구태다.
과방위 국감은 본래 소관부처·기관의 국정현안 및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미흡한 부분에 대한 시정과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자리다. 그러나 매년 국감 시즌이 되면 쏟아지는 자료 요구와 함께 기업 길들이기로 변질된다.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통신사 해킹 사고의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는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국가 사이버 안보 대응 프로세스 미비와 기술적 보안 체계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이를 CEO 개인 또는 기업만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건 정치적 소비에 불과하다.
김영섭 KT 대표는 과방위뿐 아니라 정무위, 행안위에 겹치기 소환되며 네 번이나 증인으로 채택됐다. 현직 임원도 5명 불려간다. 해킹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는 차원을 넘어 지배구조, 거취 문제까지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특정기업을 겨냥한 청문회 성격으로 비춰진다.
국감은 피감기관인 정부와 공공기관의 정책 집행을 감시하는 제도지, 민간 기업인을 공개 심문하는 자리가 아니다. 과방위가 진정 국민의 정보보호를 걱정한다면 국정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기업 경영 문제로 본질을 흐려서는 안된다.
지난달 국회 청문회에서 한 의원은 KT 대표를 향해 “김건희 낙하산이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발언했다. 근거를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확인되지 않은 풍문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했다. 이런 식의 질의는 국회 품격을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다. 다행히 올해는 예년처럼 망신주기 구태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올해 만큼은 제도적 허점을 짚는 '정책 국감'으로 남길 바란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