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 한판에 웃음꽃…“한국 문화 함께 배우며 꿈 키워요”

2025-01-23

명절이면 고향 생각이 나는 건 인지상정. 먼 이국 땅에 사는 해외 동포들 심정은 오죽하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지엔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닌 우리 동포 ‘고려인’이 약 50만명 산다. 고려인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아이들을 17일 경기 ‘안성시 다함께 돌봄센터’에서 만났다.

안성시 대덕면 내리엔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아동복지기관 ‘안성시 다함께 돌봄센터 1호점’이 있다. 내리에 사는 초등학생 20명이 이곳에서 방과후 시간을 보낸다. 학생들은 모두 고려인 후손이다.

내리는 월세가 저렴하고 공업단지와도 가까워 고려인 집단 거주지가 됐다. 대덕면 인구 1만8000여명 중 약 3800명이 외국인이다. 그중 절반가량이 고려인과 그 가족으로 내리에 삶의 터전을 꾸렸다. 이들은 러시아나 중앙아시아보다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려 한국을 찾았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상당수 아이들은 좁은 원룸에서 일가 친척 7∼8명이 함께 생활하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설 연휴를 일주일여 앞둔 이날 아이들은 방학 중인 학교 대신 센터로 왔다. 이번엔 다함께 윷놀이를 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돌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둥그렇게 모여 앉아 두팀으로 나뉘어 차례로 윷을 던졌다.

“와, 모다!”

같은 팀 아이들이 환호를 쏟아냈다. 상대 팀에선 아쉬운 탄식이 흘렀다. 하지만 윷놀이에선 모 한번이 승리를 의미하진 않는다. 잡았다가도 잡히고, 뒤처지다가도 지름길로 쏙 빠져 먼저 도착하기도 한다. 아슬아슬한 승부에 아이들은 윷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4년 전 부모님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박말리카양(9)은 “우즈베키스탄에 살 땐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한국에선 센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센터는 한국어를 가르치며 아이들이 한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이들 부모 역시 한국어가 서툰 경우가 많다. 그러니 가족 모두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오기도 한다. 아이들은 책과 태블릿PC로 한국어를 공부한다. 인근 대학교에서 온 근로장학생과 자원봉사자까지 10명 가까이 되는 교사들도 학생 한명 한명을 꼼꼼히 돌본다. 러시아어 통역 교사도 하루 2시간 센터에 머문다. 이용준 돌봄 교사는 “한국에 처음 온 아이들은 낯선 언어와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어를 배우고 친구를 사귀며 꿈을 찾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뿌듯하다”고 밝혔다.

센터 정원은 단 20명. 하지만 내리 광덕초등학교에만 200여명의 다문화 학생이 다닌다. 중·고등학생까지 합하면 내리, 그리고대덕면엔 수백명의 다문화 아이들이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박진숙 센터장은 “한 교실에 담임선생님이 한명밖에 없는 학교에선 한국어에 서툰 아이들이 충분한 관리를 받기 어럽다”며 “아이들이 한국에 잘 적응하고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안성=황지원 기자

‘한민족’ 고려인 이주 배경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사는 한민족, 고려인. 이들은 어떻게 그 먼 곳으로 가게 됐을까. 고려인 이주 역사는 18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반도 북부에 살던 농민들은 연이은 흉작과 관리들의 착취를 피해 두만강 너머 연해주로 떠났다. 1910년 전후엔 독립운동가들이 일제 탄압을 피해 연해주로 모여들며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던 1937년, 한인들에게 위기가 닥친다. 소련 정부가 이들을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것이다. 극동지역 한인들이 일본 첩자로 활동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한인들은 중앙아시아 척박한 땅을 일구며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갔다. 고려인학교를 세워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정체성도 지켜나갔다. 지난해엔 고려인 러시아 이주 160주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다양한 문화·학술 행사가 열렸다.

황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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