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지표에도 밑바닥 불안 커져
소비는 여전히 활황세…
2024년 11월 소매판매 전년보다 3.8%↑
소비 최대 대목 12월엔 더 호조세 예고
신용카드 온라인 매출은 6.7%나 늘어
서민들 “힘들다” 아우성
물가 진정에도 올라버린 생활비 부담
임금은 그대로… 70% “현재 급여 불만”
‘급전 창구’ 카드대출 연체 탕감액 급증
빚 끝내 갚지 못하는 저소득 가계 속출
앞으로가 더 문제
트럼프 정부 저소득층 고용 축소 불 보듯
관세정책으로 인플레도 다시 자극 우려
“저축 바닥난 서민 생활 큰 영향 받을 것”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를 지켜보며 전 세계인들은 놀라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미국 경제가 ‘역대급 호황’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뜨거움을 이어간 영향 속 집권당인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박빙 승부를 벌일 것으로 전망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트럼프 후보의 압승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의 대표적 지지층인 저소득층이 2016년 대선에 이어 또 한 번 트럼프 당선인에게 적극적 지지를 보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로 대표되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치 구호가 트럼프 지지자들을 뭉치게 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 가운데, 저소득층 유권자들이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이 표출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의 뜨거운 경제지표와 달리 밑바닥에서 불안과 불만이 커지고 있는 징후가 선거 결과로 드러난 것이다.
◆높은 물가에 美 서민층 ‘아우성’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인 소비 관련 지표는 여전히 견조하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달 17일 발표한 2024년 11월 소매판매액은 7246억달러로 전월 대비 0.7% 증가했다. 여기에 전년 동기 대비로는 3.8% 상승하며 여전히 미국 경제가 활황세임을 보여줬다. 미국 소비시장의 최대 대목인 12월 지표는 더욱 뜨거울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온 신용카드 사용 지표가 기대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마스터카드가 지난달 1~24일까지 집계한 결과 매장 매출이 전년 대비 2.9%, 온라인 매출은 6.7%나 늘어났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의 뜨거움과 달리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힘들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미국 정부의 대규모 양적완화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2%대로 진정됐지만 이미 올라버린 생활비가 내려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CNN방송이 소비자물가지수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0년 1월에 비해 지난해 11월 물가는 무려 22.2%나 상승했다. 설상가상으로 2023년을 기점으로 중·저소득층의 임금 인상도 정체되고 있다.
이는 가계의 부담으로 직결된다. 미국 여론조사기업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10월7~13일 5273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현재 급여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불과 30%에 불과했다. 1년 전의 34%보다도 더 줄어든 수치다. 해당 여론조사 중 급여에 불만족하는 세부 이유가 주목을 받았다. 복수응답 방식으로 이유를 물었더니 “급여가 생활비 상승을 따라가지 못해서”라는 대답이 80%에 달했다. “하고 있는 일에 비해 급여가 적어서” 등 심리적 이유가 아닌 실제 생활고가 급여 불만족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혔다. 심지어 “청구서를 지불하기에 수입이 모자란다”는 대답도 54%에 달했다.
지난해 10월 발간된 뱅크 오브 아메리카 연구소의 보고서에서도 미국 서민층의 생활고가 드러난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체 가구의 약 30%가 가처분 소득의 95% 이상을 주거비, 식료품, 공공요금과 같은 필수품에 지출한다고 답했다. 연 소득이 5만달러 미만인 가구의 경우 해당 답변의 비율이 35% 정도로 더 높았다. 미국 개인금융 컨설팅기업인 너드월렛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엘리자베스 렌터는 “저소득층은 항상 높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가구”라면서 이들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경제 변화에 집중적 타격을 받았다고 평했다.
◆빚도 못 갚는 저소득 가계 속출
생활비 인상을 감당하지 못하며 빚을 지고, 끝내 갚지 못하는 서민들도 급격히 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금융정보업체 뱅크레그데이터의 자료를 인용해 미국 신용카드 대출업체들이 지난해 1~9월 사이 약 460억달러(약 67조7000억원)의 악성 연체 대출잔액을 탕감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0%나 증가한 수치로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탕감은 대출 기관이 채무자가 채무를 갚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할 때 진행하는 것으로 대출 부실 수준을 판단하는 척도다. 신용카드 대출은 은행대출 등을 활용할 수 없는 저소득 서민층이 활용하는 대표적 대출로 꼽히는데 카드사들이 포기할 정도로 채무상황이 좋지 않은 저소득 가계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미국 가계의 비주택담보 대출은 코로나 팬데믹 직후인 2022년 이후 급격히 증가한 바 있다. 2022년 1분기 4조3500억달러였던 대출 총액이 지난해 3분기에는 4조9600억달러까지 늘었다.
마크 잔디 무디스 애널리틱스 대표는 “고소득 가구는 괜찮지만 미국 소비자의 하위 3분의 1은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면서 “현재 이들의 저축률은 제로”라고 밝혔다. 소비자 신용조사업체 월렛허브의 대표 오디세아스 파파디미트리우는 “소비자의 구매력이 약화됐다”면서 “연체는 앞으로 더 큰 고통을 예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구매력 하락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월마트, 로스 스토어, 달러 제너럴과 같이 저렴한 생필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의 매출이 늘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많이 상대하는 일부 소매업체의 수익 보고서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사람들이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고 평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악화 가능성
문제는 최근 경제 흐름상 상황이 나빠질 여지가 더 많다는 점이다. 향후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고용이 악화할 우려가 상당한 탓이다. 미국은 저소득층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공공부문이 제공하고 있는데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며 향후 저소득층 일자리가 축소될 우려가 크다.
실직 후 새 직장을 찾기 위한 기간도 느는 추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6일 미 노동부 통계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6개월 이상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업자는 160만명에 달했다. 이는 2022년 말 대비 5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실업 후 새 직장을 찾는 데 소요되는 평균 기간은 약 6개월로 2023년 초 대비 한 달가량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팬데믹 종료 후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구인난에 시달리던 미국 노동시장이 이제는 실업자들이 새 직장을 찾지 못하는 구직난 상황으로 점점 바뀌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추진 등으로 인해 물가까지 다시 자극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CNN 방송이 예일 예산 연구소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이 캐나다와 멕시코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 10%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면 2025년 물가가 0.75% 상승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상당수 중·저소득층이 수익의 대부분을 생활비로 쓰고 있는 상황이라 추가적 물가상승은 결정적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팬데믹 당시인 2021년의 인플레이션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인들이 팬데믹 기간 동안 저축한 자금을 이미 대부분 소비한 데다 아동 세금 공제 연장 및 무료 급식 등 팬데믹 시대에 대규모로 제공된 혜택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웰스파고의 이코노미스트인 섀넌 그레인은 “관세는 일회성 가격 조정 성격을 가지고 있어 기업들이 관세 부과로 인해 지속적으로 가격을 인상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러한 시나리오만으로도 저소득층 가구는 생활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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