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의 ‘혼돈’을 죽인 숙과 홀

2025-02-28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장자의 응제왕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해엔 제왕 숙(儵)이, 북해엔 제왕 홀(忽)이 있고 중앙에는 제왕 혼돈(混沌)이 있었다. 숙과 홀은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은 이때마다 이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이 베푼 은혜에 보답할 방법을 의론하였다. '모든 사람은 일곱 개의 구멍을 갖고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혼돈만 구멍이 없으니, 그에게 구멍을 뚫어주자.' 그래서 하루에 한 개씩 구멍을 뚫어주었는데 혼돈은 이레 만에 죽고 말았다."

우린 단순히 혼돈에 구멍이 뚫린 것, 그래서 자연스러움을 잃고 죽음에 이른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장자가 늘 하는 말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이고 무용지용(無用之用)이니 같은 맥락에서 그리 해석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글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숙은 남쪽에 살고 홀은 북쪽에 삽니다.

그리고 때때로 중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지요.

이렇게 나누어져 있다는 것은 대립구조 속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로 보면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사용자와 근로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많은 부분에서 대립이 이루어지고 있고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습니다. 숙과 홀이라는 한자도 그러합니다. 숙(儵)은 빠르게 나타나는 모양을 홀(忽)은 빠르게 사라지는 모양을 나타냅니다. 이 역시도 반대말로 대립적 사고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들은 중앙인 혼돈의 땅에서 만납니다.

혼돈은 분화되지 않은 공간이고 대립하지 않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연을 상징하지요.

있고 없음, 좌와 우, 어둠과 밝음, 대립하는 모든 것을 끌어안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숙과 홀은 그들의 처지에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 혼돈에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그것이지요. 결국 인위적인 칠규(七竅, 일곱 개의 구멍)는 혼돈을 죽게 만든 원인이 됩니다. 밝게 듣고, 밝게 보고, 냄새 맡고, 맛보는 모든 것은 구분 짓는 행위의 시작입니다. 장자는 지나친 구분과 대립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병폐를 낳는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을 겁니다.

혼돈은 의식 상태가 명료하지 못하여 자유의지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기 힘들고 주의를 기울이거나 기억하기 어려운 정신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생각의 여러 갈래를 하나로 녹여내어 이해의 바다를 이루는 장(場)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친 양극화 때문에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합니다. 혼돈처럼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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