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박상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 “대학 재정 지원은 미래에 대한 투자…한국대학 글로벌 모델 실현하지 못해 아쉬움 남아”

2025-01-16

대학 재정 위기는 대학 경쟁력 약화에 영향

2026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 대화 물꼬 될 것

이공계열 학생에 충분한 지원 있어야

지난 1년은 유난히 혼란스러웠던 한해였다.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의대 증원으로 유례없는 의대생의 집단 수업 거부가 이뤄졌고, 대학은 무전공 입학,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로의 변화 등 시시각각 쏟아지는 정책에 대비하기조차 버거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박상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회장은 임기 내내 고등교육 '현안'에 직면해 있었다. 대교협 회장 임기가 끝나는 2월 말까지도 등록금 인상 이슈로 전국대학 총장의 총의를 모으고, 대정부 대화에 나서야 한다. 대학의 생태계가 더 나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임기를 마치고 중앙대 총장으로 돌아가는 그의 소회에서는 후련함보다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14일 중앙대 총장실에서 박 회장을 만나 지난 1년 임기를 돌아보며 고등교육 현안에 관한 생각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물었다.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대교협 회장으로 보낸 1년은 어땠나.

▲지난 1년은 한국 고등교육이 직면한 다양한 도전과 변화를 체감했다. 깊은 고민과 함께 실질적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노력했던 시기였다. 17년째 계속된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위기, 그리고 글로벌 경쟁력 강화 필요성 등 현안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특히 대학이 처한 재정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등록금 규제 철폐와 정부 고등교육재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라이즈, 글로컬대학30 등 지역혁신 중심 정책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대학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동시에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현재 서울 주요 사립대의 등록금 인상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나.

▲17년간의 등록금 동결로 인한 대학 재정의 위기가 대학 경쟁력 약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가 인상으로 인건비, 공공요금 등 대학 지출이 계속 늘어나는데 재정 상황이 열악해지면 그만큼 교육 투자 여력이 줄어들어 고등교육 질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법적 인상 한도 내에서 자율적인 등록금 책정을 이뤄져야 한다. 등록금 인상은 갑자기 등장한 얘기는 아니다. 수년간 이어져 왔고, 등록금 자율화를 계속 요구해 오면서 지난해 인상 분위기가 컸지만, 총선을 앞두고 물가 안정을 측면에서 자제했다. 대학은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진 것이다.

이제는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과거처럼 재단의 배만 불리는 나쁜 사학은 이제 거의 없다. 대부분 대학은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대학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전초기지다. 이렇게 재정 상황이 악화하면 그 미래도 밝지 않다.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등록금 외에 재정 안정화를 위한 방안은 없을까.

▲중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2024년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한국 고등교육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약 1만3000 달러 수준으로 OECD 평균 2만 달러의 66.2%에 불과하다. 초·중학생 1인당 공교육비보다도 낮다. 고등교육 질을 개선하고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학생 1인당 고등교육 공교육비를 높여야 한다. 정부의 공적 지원 비중과 민간 지원 비중을 고려해 단계적으로는 정부의 지원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재정 지원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산학협력, 기부금 모금 활성화 등 대학의 자구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대학의 자체적인 노력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미국의 대학은 적극적인 산학협력으로 수익을 많이 내고 있다. 다만 국내 대학은 재정 지원이 잘 이뤄지지 않고, 여건이 성숙 되지 않은 상황에서 더 앞으로 나갈 기회가 없어져 수익을 창출하는 기회도 사라지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기금모금 등은 서울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아주 일부 대학에서만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국립대는 정부가 필요하면 투자라는 명목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일반 사립대의 어려움이 더 크다. 우선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지원이 선행 돼야 한다.

-의대 증원 여파도 대학 재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의료계와 꼬인 실마리를 풀 방안은.

▲의학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교육부에서는 2025년 신입생 입학 후 의대 본과에 들어가는 2027년 전까지 3년간 준비기간이 있다고 봤다. 교수 증원, 강의실 및 임상 실습실 등 시설과 실습 기자재 확충 등 필요한 지원방안 마련을 통해 의학교육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대학도 의학교육의 질 제고를 위한 정부와의 협력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물론 대학, 의료계, 정부 간 지속적인 협의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을 백지화하면 갈등이 해결될까.

▲2026학년도 증원 백지화도 논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정부가 대학을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운영 방식이나 교육 환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 의대가 대표적인데 처음부터 신중한 접근이 있어야 했다. 정책을 수행하는 사람은 목표치나 숫자에 너무 몰입하게 되면 실제 현장에서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정부가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했으니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

-의대 증원과 관련해서는 기초의학 부실, 이공계 인재 이탈 등 여러 문제가 얽혀있다.

▲의사협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기초의학이 다져지지 않은 것이 문제다. 그동안 한국은 기초의학자를 키우는데 소홀했다. 이 역시 대학의 재정 문제가 열악해 생긴 부분이다. 한 국립대에서는 10년간 1000명 넘는 의대생이 졸업했는데 그중 기초의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지역에서는 해부학, 생리학 등 기초의학을 가르칠 교수가 없어 은퇴 교수가 강의한다.

한국은 의대 선호가 압도적으로 높았던 나라다. 의대 증원과 이공계 육성을 같이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공계 육성책을 먼저 정비한 뒤에 의대 정원을 손보는 것이 맞다. 그 와중에 연구개발(R&D) 예산은 줄였다. 과학 기술을 공부하는 학생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책은 구체적인 사례나 통계를 가지고 세밀하게 짜야 한다. 정책 실행 순서도 중요하다.

-인재 해외 유출, 의대 진학은 교육계의 큰 우려다.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방법은 없을까.

▲미래 사회에 대응하는 국가 발전과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의대 선호 경향을 완화하고, 이공계열의 중도이탈자 방지 및 인재 유인을 위한 구체적인 정부의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이공계열 학생들에게 많은 지원이 있어야 사회적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이공계열 투자 확대는 물론이고 석·박사생 처우 개선(장학금과 생활비 지원, R&D 학생인건비 실질적 상향 등), 사회적 지위 보장을 통한 연구몰입 지원, 전임 교수 정원 대폭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라이즈 체계 내에서 대학 우수 이공계 인재가 도전적인 교육과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역 이공계를 지원해야 한다. 지역 대학 우수연구자가 장기적·안정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지역 R&D 과제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라이즈가 가동된다. 지자체 권한 이행에 대한 의견은.

▲지자체·대학·산업계·교육청 등 지역혁신기관이 참여 및 협력하는 구조는 긍정적이다. 지역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공동 목표가 생겨 궁극적으로는 지역발전을 이끌어 낼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각 참여 주체가 협력의 필요성과 가치를 공감하고 제도적 기반과 거버넌스 체계가 원활하게 뒷받침 돼야 한다. 대교협은 라이즈 체계에서 대학의 의견이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중앙 정부 및 지자체와의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에 특히 집중했다.

대교협 회장을 하기 전에는 지역 대학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회장을 맡고 지역이 무너진다는 가정을 해보니 지역뿐 아니라 결국 수도권도 영향을 받을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한국에 연구 중심 대학이 수도권에 20개, 지역에 20개가 있다는 통계가 있다. 이들 대학에서 대학원 중심 교육을 하고 연구자를 길러냈는데 지역 대학이 없다면 연구자가 설 곳이 없다. 결국 균형 잡힌 대학 생태계가 형성돼야 연구자도 길러낼 수 있다.

-1년이라는 임기 동안 수행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

▲대교협 회장으로 선임되면 대학의 글로벌 모델을 만들겠다는 구상이 있었다. 한국은 원래 인재 중심의 소프트파워 강국인 나라다. 과거 유능한 인재들은 해외로 유학을 가서 공부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됐다. 지금 대한민국은 K-컬처,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여러 분야가 선도하고 있다. 이런 분야에 우수한 학생을 유치해 잘 육성한 뒤 자국으로 돌아가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 그들이 미래에는 '친한파'가 돼 한국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여러 현안에 밀려 이를 실행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임기를 마치면 중앙대 총장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므로 중앙대에서라도 이런 모델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대학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기관이 됐으면 한다. 대학 관련 기사에는 무수한 악성 댓글이 달린다. 이게 진짜 국민이 대학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닌지 우울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국은 훌륭한 고등교육으로 이 위치에 온 나라다. 국민에게 존중받을 수 있는 대학이 되고, 사회의 등불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인식돼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박상규 대교협 회장

박 회장은 중앙대 응용통계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 버펄로대학 대학원 통계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연구교수 생활을 했다. 이후 중앙대 경영경제대학 응용통계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입학처장, 기획처장, 미래기획단장, 기획관리본부장, 행정부총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2020년 중앙대 제16대 총장에 취임했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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