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비사
제2부. 5공 청산과 전두환·노태우 갈등
5회. 백담사 전두환 ‘박정희 같았으면 자살’

이순자 ‘외나무 다리 건너 백담사는 저승 같았다’
1988년 백담사는 요즘과 많이 달랐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마을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7km 계곡은 지금과 다를 바 없었지만, 당시 백담사는 심산유곡에 버려진 폐허 같은 한사(寒寺)였다.
절이 건너다 보이는 개울엔 얼기설기 엮은 나무 다리만 있었다. 이순자 여사는 개울 건너편에서 처음 본 백담사 풍경을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 저승 같았다’고 표현했다. 비가 많이 오면 다리는 쓸려 내려갔다. 나중에 돌다리가 만들어졌다. 돌다리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쓴 ‘수심교(修心橋)’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정말 열악한 건 전두환·이순자 내외가 머물 요사채였다. 그나마 절에선 가장 나은 방이라지만 구들장이 내려앉은 채 방치돼 왔다. 하루 전 부랴부랴 도배는 했지만 아궁이에 불을 때자 매캐한 연기가 방 안으로 몰려들었다. 비닐로 뒷문을 봉쇄하고 담요를 끈에 매달아 안쪽에서 문을 가렸다.
어둡던 2평 방이 동굴이 되었다. 전기가 없어 촛불 두 자루를 켜고 전직 대통령 내외가 나란히 방바닥에 앉았다. 오후 4시 백담사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체감 영하 20도였다. 대청봉에서 수렴동 계곡으로 내리친 찬바람은 산짐승 소리를 냈고, 그 바람에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풍경 소리는 귀곡성처럼 들렸다.

전두환은 이틀간 두문불출했다.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하는 바람에 덥수룩한 얼굴에 공허한 눈망울만 깊어 보였다. 그러나 정면돌파형 전두환은 이틀 만에 털고 일어났다. ‘절에 왔으니 절 일정표에 맞춰 생활하겠다’고 선언했다. 백지에 일정표를 그려서 방 벽에 붙였다. 옆에 걸린 달력 날짜 위에는 매일 가새표(X)가 그려졌다.
입산 6일 만인 11월 29일부터 새벽 예불을 시작했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방 아랫목 대야에 떠다 놓은 물을 수건에 적셔 몸을 씻고 대웅전으로 가 얼음장 같은 마루바닥에 엎드려 108배를 했다.
전두환, 구속되는 장세동에게 편지 ‘모두 내 탓이다’
12월 1일 익명의 전화가 백담사로 걸려왔다. ‘오늘 12시부터 도청장치가 설치된다’는 제보였다. 이후 모든 중요한 연락은 직접 사람이 오가며 전달해야 했다. 전두환을 더 옥죈 것은 외부인 출입통제. 특히 군 후배들의 백담사 출입금지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