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는 ‘ABA’ 알파벳 세 자가 식당·마트 등 돈거래가 일어나는 거의 대부분의 장소에서 쓰인다. 고객이 “ABA”라고 말하면 캐나다계 은행인 ABA뱅크의 QR 송금 시스템을 이용해 결제 또는 송금하겠다는 뜻이다.
캄보디아 현지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금융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ABA뱅크는 “보기 드문 외국계 은행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현지 QR 송금 인프라를 선점해 최근 3~4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거뒀다. ABA뱅크의 예금 자산은 2019년 말 34억 달러에서 2023년 말 92억 달러로 4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순이익은 2019년 1억 2700만 달러에서 2023년 2억 7600만 달러로 2배 넘게 증가했다. 순이익 규모에서 명실상부한 캄보디아 1위다. KB국민은행의 캄보디아 진출을 초기부터 진두지휘한 김현종 KB프라삭은행 부행장은 “장사하는 모든 사람을 비롯해 한국 교민조차도 캄보디아에서 금융 결제를 하기 위해 ABA뱅크 계좌를 만들고 있다”며 “ABA는 QR 결제 시스템을 바탕으로 저원가성예금(CASA)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손철수 우리은행 캄보디아 법인장은 “ABA뱅크가 캄보디아의 문화적 특성들을 반영해 성공을 증명하고 있으니 우리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ABA뱅크의 전신은 한국인이 세운 한인은행이다. 고(故)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1996년 설립했다. 하지만 경영난을 겪으며 사모펀드를 거쳐 현재의 내셔널뱅크오브캐나다(NBC)로 주인이 바뀌었다. NBC는 2014년 ABA뱅크 지분 일부를 인수한 직후 공격적인 디지털 전환에 나섰다. 이듬해에 캄보디아 최초의 모바일뱅킹 앱을 선보였고 2019년 3월 비자(VISA) 등과 협력해 QR 송금 시스템인 ‘ABA페이’를 내놓았다. 신용카드업이 발전하지 않은 캄보디아에서 현금 계좌 기반의 QR 송금 시스템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캄보디아 정부가 주도한 ‘현금 없는 사회’ 정책과 코로나19가 맞물리면서 ABA뱅크는 단숨에 QR 송금 시장에서 절대 강자 위치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동남아시아 모바일 플랫폼 ‘그랩’과 결제 플랫폼 파트너십을 맺으며 디지털 전환을 이어가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한 금융사 관계자는 “캄보디아 금융계는 기업금융보다 개인 고객 시장이 대부분이어서 수신과 대출의 수익성을 결정짓는 저원가성 예금 확보가 경쟁의 핵심”이라며 “ABA뱅크는 QR 송금 시장을 선점하면서 예금을 확보해 2020년 이후 큰 성장을 이뤄냈다”고 전했다.
국내 금융계도 ABA뱅크의 성공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는 테크를 활용한 전략을 펼쳤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지주의 한 고위 관계자는 “ABA뱅크의 경우 자체적인 전략 방향, 정부 정책, 외부 환경 3박자가 맞아떨어져 성과를 냈다”며 “해외에 진출할 때 지급결제 등 분야에서 신기술을 활용해 시장을 선점하고 현지 금융시장 상황을 판단해 집중 투자할 사업 분야를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