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관세가 뭐길래...호구는 되지 말자

2025-03-28

전 세계가 무역전쟁으로 인해 자국의 이해 득실을 따지기에 여념이 없다. 민주주의 진영의 사법 경찰을 자칭하며 동맹국들의 국방을 책임지고, 자유무역의 심장으로 여겨졌던 미국의 배신은 전 세계의 경제 지도를 바꾸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국내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민주주의 국가의 안녕을 책임지는 사법 경찰 역할을 해오던 미국이 실상은 민간 경비업체에 불과했음이 드러나면서 유럽은 향후 수년 간 국방비 증대에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방산업체들도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중국을 대신해 미국 의존도를 높여왔던 국내 기업들은 트럼프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자동차부터, 반도체, 철강뿐만 아니라 최근 호황을 맞은 전선업체 등 다른 산업의 기업들도 미국이 관세 품목을 어디까지 확대할지 알 수 없기에 대응 전략이 시급한 상황이다.

당장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31조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지만, 산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자동차는 우리나라에서 미국 수출 1위 품목이다. 지난해 자동차 수출액은 347억4400만 달러로 전체 자동차 수출액 707억8900만달러의 49.1%를 차지했다.

미국의 평균 수입 가격에서 한국산 자동차·부품의 수입 가격 비율은 0.8이라 한다. 1을 기준으로 낮을수록 자동차 평균 수입가격보다 낮다는 뜻이다. 그동안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관세 없이 수출한 덕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북미 지역 수출이 많은 현대차그룹은 현지 투자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전기로 설비 도입 역시 미국 현지에서 자동차강판까지 수직계열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현대차그룹이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을 천명한 이후로 수직계열화를 내려놓는 듯 했지만, 현지 투자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허나 다른 국내 기업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꺼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미국의 생산단가가 상상 이상으로 높다는 점이다. 특히 노조의 힘이 워낙 세고, 세분화 돼 있어 미국에 생산시설을 만드는 것은 자국 기업마저 꺼린다.

두 번째 이유는 트럼프 정권의 기조가 언제까지 갈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생산 시설을 투자하는 것보다 2~3년 정도 참는 것이 더 이익일 것으로 보는 기업들도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투자 후 공장이 완공되기까지 최소 2~3년은 걸린다. 사실상 그 시기에는 레임덕이 올 시기다. 정권이 바뀌면 관세가 없어질 수 있고 현재 기조가 싹 바뀔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 만든 제품은 미국 내에서도 가격경쟁력이 높지 않아 사실상 다른 지역에 팔기 어렵기 때문에 쉽사리 투자 결정을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결국 전 세계적으로 관세 장벽과 보호무역주의가 성행한다면 우리는 우리 시장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수 시장이 크지 않음에도 국내 시장은 여전히 개방적이다. 이를 막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 대표적으로 철강업계를 꼽을 수 있다.

철강업계는 지난해 후판 반덤핑 제소를 통해 관세를 이끌어냈다. 현재는 열연강판과 컬러강판이 반덤핑 조사에 들어간 상황이다. 열연강판에 대해서는 철강업계 내에서 이견이 있다. 열연강판은 후판과 달리 주요 고객들이 같은 철강기업들이기 때문이다. 열연강판을 사서 재압연해 냉연판재류 제품을 만드는 대표적인 기업들로 동국씨엠과 KG스틸, 세아제강 등이 있는데, 이들이 포스코, 현대제철과 대립 중이다.

이들 냉연 제조사들은 당장 원가 상승에 따른 이익 반감으로 관세 부과에 반대하지만, 컬러강판 역시 반덤핑 조사가 이뤄진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정부는 주변 경쟁국의 철강 산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내 철강업체들과 경쟁을 하는 기업들은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기업들이다. 문제는 이들 시장에 우리 제품을 수출하지 못하는 반면, 국내에는 무방비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들이 수출을 못하는 이유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과거에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증치세를 부과했었고, 현재는 값싼 제품과 과잉 공급으로 국내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 기업들은 적자 누적에서 청산 되기는커녕 지속적인 과잉공급 중이다.

일본은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세워져 있는 나라다. 보이지 않는 장벽은 바로 철강업계 내 ‘카르텔’이다. 일본 고객사들이 해외에서 제품을 수입하면 일본 내 모든 철강 기업들이 그 고객사에 공급을 중단해버린다. 과거 실제 이런 사례가 있은 뒤 일본 고객사들은 함부로 수입을 하지 않는다. 그나마 수출을 하고 있는 곳은 포스코와 동국제강으로 고품질 제품을 인정받은 사례다.

포스코가 가장 많은 수출을 하고 있는데,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사실 이는 포스코와 일본 제철소 간 보이지 않는 관계가 작용하고 있다. 수출 가격부터 수출량 모두 일정 범위 안에서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 포스코의 수출가격은 현지 가격의 90% 수준에서 형성된다면 반대의 경우 역시 비슷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내 업계가 열연강판 반덤핑을 건 것은 바로 일본의 제철소들이 이러한 관례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계기가 된 것은 바로 엔저 영향이다. 일본 제철소들이 엔저 효과를 이용해 수출을 늘렸다.

이는 엔저 현상이 극심했던 2022년과 2023년 여실히 드러난다. 일본으로부터 철강 제품 수입량은 2022년과 2023년에 급증했다. 2020년 일본 철강재 수입량은 475만6000톤이었고, 2021년 477만8000톤, 2024년은 472만5000톤이었다. 반면 2022년과 2023년은 각각 543만6000톤, 560만7000톤으로 수입이 급증했다.

2024년 수입량이 정상화된 것은 엔저 효과가 감소한 데다, 국내 기업의 반발에 따른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를 의식해 예년 수준으로 돌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수입량에서 보듯이 매년 적정 수준으로 유지됐던 수입이 2022~2023년 100만톤 가까이 급증하면서 국내 제철소들의 심기가 뒤틀렸다는 걸 알 수 있다.

국내 제철소들이 경기 침체와 후방산업 침체로 부침을 겪었음에도 냉연사들은 원가 절감을 통해 이익을 유지한 것이 사실이다. 국내 철강 기업들은 담합을 할 수도 없고, 자동차 산업과 같이 정부가 큰 관심을 가지지도 않기에 사실상 무차별 수입에 무주공산인 상태다.

그렇기에 이번 반덤핑 제소는 국내 철강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와 시장 보호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일부 수출 경쟁력 약화를 운운하는 이들도 있지만 냉연 제조사들은 수출 제품들에 원산지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고, 대부분 국산 열연강판으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고 있기에 수출력 강화는 핑계에 가깝다.

특히 수출 제품들은 건자재 제품들보다 가전 등 고급 제품이 압도적으로 많고, 이들 제품들은 당연히 값싼 저품질 열연강판으로 만들지 않는다. 중국산 열연강판은 건설자재용, 일본산 열연강판은 일부 고급제품들의 이익 확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찰나의 이익을 위해 반덤핑 허용 여부를 놓고 기싸움을 하는 것보다 자국 산업 보호와 기술 경쟁력 확보에 집중하는 것이 미래의 대계를 위해 더 필요한 것이라 본다.

열연강판 뿐만 아니라 컬러강판 역시 수입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중국과 일본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언제나 국가 간 무역에서 우리만 호구처럼 당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철강업계에서는 수입이 늘어날 때마다 정부에서 관세 보복이 두려워 철강업계를 버렸다라는 말이 나왔다. 전 세계가 각자도생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역시 기간 산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