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2km 쪼개기’로 검증 피한 숲길 276km…산림청 ‘패싱 고시’가 길 터줬다

2025-10-20

2020년 이후 전국에서 조성된 숲길의 69%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타당성 평가 없이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법은 숲길 조성 시 타당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산림청 고시는 2km 이하 사업은 평가를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업자들이 ‘구간 쪼개기’를 이용해 타당성 평가를 우회하면서 산림을 훼손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전국 숲길 조성사업…타당성 평가 없이 벌목 ‘속도전’

2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문금주 더불어민주당의원이 산림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0년 이후 추진된 숲길 조성 사업지 174곳 중 120곳(약 69%)이 타당성 평가 없이 진행됐다. 총 사업 구간은 276km로 서울 여의도에서 광주광역시까지를 잇는 거리와 맞먹는 거리다.

숲길 조성사업은 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산림 내 등산·트레킹·휴양 목적의 길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2019년까지는 산림청 보조사업으로 진행되다가 2020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돼 지자체가 직접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는 2020년 숲길 조성사업의 지자체 이양으로 인한 무분별한 난개발을 우려해 숲길 조성 시 생태계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타당성 평가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산림휴양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같은 해 산림청은 ‘숲길 조성계획 타당성 평가 세부기준 고시’를 정하면서 추정 공사금액 5000만 원 이하 또는 2km이하의 숲길 구간 등에 대해 타당성 평가를 생략할 수 있도록 했다. 주무관청이 행정규칙인 고시를 통해 법률이 정한 타당성 평가 의무를 회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 셈이다.

산림청의 이른바 ‘면제 고시’ 제정 이후 지자체들은 숲길 사업을 2km 규모로 쪼개 추진하는 방식으로 타당성 평가를 건너뛰었다.

전국 2km이하 규모 숲길 연평균 사업 수는 2020년 이전 4.3건에서 고시 제정 이후 16.3건으로 폭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사업에서 2km이하 규모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4.3%에서 56.3%로 2배 넘게 늘었다.

숲길 조성 과정에서 대규모 산림 벌목이 이뤄진 정황도 확인됐다. 경북 영양 오십봉(37.5㎥), 강원 양양 해안생태탐방로(35㎥), 전북 장수 남덕유산(47㎥), 강원 평창 청옥산(16.9㎥), 전남 지리산 호수공원(86㎥) 등 16곳의 숲길 조성지에서 총 362㎥의 나무가 잘려나갔다. 20피트 컨테이너 11개 분량이다. 주무관청인 산림청은 지자체들이 타당성 평가 이행 여부를 파악하지 않고 있다가 국회 요청 이후 실태 조사에 나섰다.

문 의원은 “법률에 맞게 숲길 조성 시 고시의 타당성 평가 예외사유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며 “숲길조성 과정에서 산림 벌목, 난개발 등 취지에 맞지 않는 사업이 이뤄졌는지 전수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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