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짝퉁 시계와 오마주 시계의 차이는’
명품하면 항상 따라오는 건 무엇일까요. 바로 ‘짝퉁’이라고 불리는 가품입니다. 아, 짝퉁이라는 단어는 표준어 입니다. 따라서 이 기사에서도 가품이라는 격식있는 표현보다 친숙하게 짝퉁이라고 쓰겠습니다.
명품이라는 재화가 존재하는 이상 그림자처럼 짝퉁은 자연스럽게 존재합니다. 이유는 너무나 단순합니다. 명품이라는 이미지에 편승해 수익활동을 벌이는 것입니다. 소비자의 허영심은 짝퉁 수요의 원천이죠.
시계 시장에서도 짝퉁 시계는 너무나 만연합니다. 무서운 점은 짝퉁 시계 산업도 명품 시장과 비례하게 성장하면서 하나의 산업으로 커진 상황입니다.
명품과 짝퉁 시계들을 보다보면 명품도 짝퉁도 아닌 기묘한 존재들이 눈에 띕니다. 이른바 명품의 디자인을 일정 부분 따라하는 ‘오마주’(hommage) 시계입니다. 이같은 오마주는 시계 뿐만 아니라 전 분야의 패션,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창작 활동이라면 전 분야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짝퉁이고, 무엇이 오마주인지 차이점과 오마주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갈수록 정교해지는 ‘짝퉁의 기술력‘

짝퉁이라고 불리는 가품은 말 그대로 원본의 브랜드와 제품을 그대로 따라한 제품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제품을 뜻합니다. 명백하게 지식재산권과 상표법 위반입니다.
소비자들은 짝퉁을 사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짝퉁을 구매했다는 도의적인 비판을 받을 순 있어도, 구매한 짝퉁 역시 하나의 재산이자 상품으로 인정됩니다.
짝퉁을 만들거나 판매하는 것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다른 브랜드나 상품의 권한을 침해하면서 부당한 수익을 얻기 때문이죠. 이 점은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같습니다.
하지만 법을 비웃는듯 짝퉁 시계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광저우시에 밀집해 있는 짝퉁 시계 공장에서는 ‘장인‘(匠人)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시계공들이 정교한 가품 시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직접 사진을 보면 육안으로는 절대 진품과 가품을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10년전만 해도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한 눈에 짝퉁 시계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어느정도 티가 났죠. 하지만 요즘에는 모양은 물론 무게와 시계 내부 무브먼트까지 모두 일대 일로 흉내 내면서 한눈에 알기 어렵습니다.
특히 롤렉스(Rolex)나 오메가(Omega), 까르띠에(Cartier) 같은 짝퉁의 수요가 많은 시계일수록 정교함이 학습되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구분은 힘든 지경이죠.
이 점은 국내 시계장인이 몰려 있는 예지동에서도 공통된 의견입니다. 물론 고배율의 현미경을 가지고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글씨나 기어 하나하나 비교하면 진품과 짝퉁의 차이는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의심 된다며 상대방의 시계를 검증하겠다고 현미경을 가지고 들이대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제로 그런 행동을 했다간 무례한 사람 취급 받는 것을 넘어 인간 관계에서 ‘손절’을 당할 수도 있죠.
게다가 의외로 사람들은 타인이 무슨 시계를 차고 있는지, 그 시계가 진품인지 짝퉁인지 큰 관심이 없습니다. 아마 오메가 최고경영자도 자사 제품을 흉내낸 짝퉁을 보면 큰 의심 없이 “우리 시계 사줘서 감사해요, 제임스 본드”라고 말할 거라 감히 생각합니다.
◆‘짝퉁인듯 아닌듯’…오마주 시계는 왜 가능할까

오마주는 프랑스어로 ‘존경’이라는 뜻 입니다. 창작의 영역에선 원본에 대한 존경을 담아 디자인 등 유사점을 가지고 재창작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마주 시계는 쉽게 말하자면 롤렉스나 오메가 같은 명품 시계와 디자인이 거의 비슷한데 브랜드 로고만 다르거나, 약간의 디자인 변형이 있는 시계를 말합니다.
특히 마이크로 브랜드라고 불리는 작은 규모의 시계 제조업체나 시계 스타트업 쪽에서 이 같은 오마주가 흔하게 일어나죠. 마이크로 브랜드들이 자체적인 디자인을 개발하지 않고 오마주 시계를 생산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잘 팔린다는 거죠.
그럼 여기서 의문점이 생깁니다. 롤렉스나 오메가 등 명품 시계 브랜드는 자사의 시계와 유사한 제품을 생산하는 마이크로 브랜드를 왜 소송을 하지 않을까요?
바로 명품 브랜드 역시 자사의 시계 디자인이 ‘최초’가 아니라는 결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가장 잘 알려진 명품 시계 모델인 롤렉스의 데이트저스트(Datejust) 모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롤렉스의 데이트저스트는 원형의 시계 다이얼과 보석 또는 바(bar) 형태의 인덱스, 다이얼을 둘러싼 울퉁불퉁한 질감의 베젤(Bezel)로 디자인 돼 있습니다.
하지만 원형의 다이얼도, 보석 형태의 인덱스도, 베젤도 롤렉스가 최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롤렉스도 과거 누군가 만든 시계 디자인을 어느정도 참고해서 데이트저스트 모델을 개발했기 때문에 ‘최초의 디자인’은 누구인지 알 수 없죠.
이 때문에 최초로 디자인한 사실을 입증해야하는 고소인 입장에선 소송에 들어가도 사실상 이기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아, 물론 브랜드 로고까지 따라하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건 누가봐도 명품 브랜드 이미지에 무임승차 하려는 의도가 명백하기 때문이죠.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빅 5’ 브랜드 중 하나인 오데마피게(Audemars Piguet)의 ‘로얄오크(Royal Oak)’의 경우 세계적인 시계 디자이너인 제랄드 젠타(1931~2011)가 직접 디자인 한 데다가, 팔각형의 독특한 시계 모양이 최초 디자인으로 인정을 받아 오마주 시계를 상대로 소송에서 이긴 사례가 있죠.
결국 명품 브랜드는 자사의 제품을 오마주 한 시계들을 엄격하게 대응하기 보다 공생의 길을 택했습니다. 결국 오마주 제품은 명품 시계에 대한 간접적인 홍보 효과로 이어집니다. 오마주 시계로 시작해서 명품 시계에 대한 환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너무나 흔한 일이죠.
◆“오마주도 짝퉁이다” vs “소비자의 선택 폯을 넓힌다”

오마주 시계를 두고 시계를 좋아하는 애호가들 사이에선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립니다. 오마주 시계에 대해 엄격한인 사람들은 “오마주 역시 디자인을 흉내낸 짝퉁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관대한 사람들은 “명품 시계의 디자인도 원조는 아니며 오마주 시계가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시계 디자인을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분명 시계 산업에서 오마주 문화는 장점이 많습니다. 신생 시계 업체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국산 시계 브랜드인 로만손(Romanson) 역시 적극적(?)으로 명품 시계 디자인과 유사한 오마주 제품을 내놓습니다. 로만손 뿐만 아니라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유럽 등 전 세계에서도 신생 시계 업체는 대부분 자사 시계 한 두개는 오마주 제품을 출시할 정도죠.

물론 자사의 성능이나 디자인 등 연구개발을 소홀히하면서 명품 시계 디자인만 따라하는 ‘카피캣’(Copy Cat)은 분명 지양돼야 할 부분입니다. 창조적인 고민 없이 모방만 하게 된다면 그 산업은 죽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거든요.
다만, 소비자 입장에선 수백만~수천만원을 주고 비싼 시계를 차는 것보다, 명품 시계 가격의 1% 수준으로 다양한 오마주 시계를 즐기는 것도 합리적인 소비인 것 같습니다.
결국 정답은 없습니다. 타인을 부러워하거나 비난할 필요도 없습니다. 소비는 각자의 선택이니깐요.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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