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가치 260조… 18일 ‘산의 날’
전후 민둥산 극복신화 세계가 주목
산림녹화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보존 중심이던 산림정책 전환기 맞아
탄소중립 실현·기후위기 대응 담아야
숲의 미래가 인류의 내일
지속가능성 위해 숲 가꾸기 제때 추진
감소추세 산림면적 다양하게 확대해야
산림복지산업 정책적·제도적 지원 필요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 대부분 산은 흙이 드러나 보일 만큼 나무나 풀이 없는 벌거숭이산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나무 수탈로, 광복 이후에는 6·25전쟁 등으로 대부분 국토가 초토화되면서 붉은색의 맨살을 드러냈다. 화전민의 무분별한 산림 훼손과 허가 없이 산의 나무를 몰래 베어가는 도벌이 성행하면서 산림은 더 황폐화했다. 1967년 산림청 출범 후 수십년간 산에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드는 치산녹화 사업이 이뤄지면서 산은 푸른색을 되찾았다. 6·25전쟁 이후 70여년 만에 산림 1㏊당 나무 총량(임목축적)은 28배 늘었다.
국토의 3분의 2가 산인 우리나라에서 산은 환경 보전과 국민 복지, 경제 성장에 필수적인 공익 자원이다. 산림의 본래 가치는 목재와 임산물 생산·활용 등 경제적 기능이었으나 최근엔 산림이 인간에게 지속적인 생존을 보장해 주는 ‘환경적 기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산의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이 인류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알리고 산의 지속가능성과 보호를 위해 정부는 2002년부터 매년 10월18일을 ‘산의 날’ 기념식을 열고 있다. 식목일이 나무 한 그루의 가치를 본다면 산의날은 산림과 숲 전체의 가치를 살피고 보존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김인호 산림청장은 “산의날은 숲이 단순한 자연을 넘어 국민이 함께 지켜온 삶의 터전으로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산임을 다시 확인하는 뜻깊은 날”이라고 말했다.
◆휴양과 열섬 완화 등 산림의 공익 가치 연간 260조원
지난 4월 우리나라 ‘산림녹화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산림녹화 기록물은 6·25전쟁 이후 황폐된 국토를 녹화한 산림사업 기록물이다. 영림계획서, 조림대장, 작업일지, 화전정리지침, 산림계약 등 문서와 지역주민들이 참여한 산림녹화 사진, 동영상, 포스터, 상장 등 모두 9619건의 방대한 분량의 녹화 역사기록이다.
산은 경제·산업적 가치와 함께 환경적·경제적·사회적 가치 등 다양한 기능과 가치를 갖고 있다.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온실가스 흡수와 대기정화, 산림휴양 등 환경·사회적 기능을 비롯해 경제산업, 복지까지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15일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산림의 공익기능 가치는 259조원에 이른다. 이는 같은 해 국내총생산(GDP·1941조원)의 13.3%, 농림어업총생산(34조3000억원)의 8.1배에 해당한다. 국민 1인당 연간 499만원의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산림의 가장 큰 공익적 기능은 온실가스 흡수 및 저장 기능이다. 이 기능에 대한 평가액은 97조6000원으로 산림의 전체 공익적 가치의 37.8%를 차지한다. 이어 산림경관 제공 31조8000억원(12.3%), 산림휴양 28조4000억원(11.0%), 토사유출 방지 26조1000억원(10.1%), 산림 정수 15조2000억원(5.9%) 등의 순이다. 이 외에 수원 함양 12조1000억원(4.7%), 산소 생산 11조6000억원(4.5%), 생물다양성 보전 11조6000억원(4.5%), 토사 붕괴 방지 11조5000억원(4.4%), 산림 치유 6조7000억원(2.6%), 대기질 개선 5조3000억원(2.0%), 열섬 완화 6000억원(0.3%) 등의 공익적 기능이 있다.
산림의 경제·산업 기능은 매년 확장세이다. 산림산업은 임산물 생산·제조·유통뿐 아니라 산림자원을 이용한 휴양·치유 등을 서비스하는 산업까지 포함한다. 산림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산림산업 전체 매출액은 146조원이다. 산림산업 관련 사업체는 13만5000개로 업체당 평균 11억원의 매출을 냈다. 분야별로는 임산물 도소매·운송업이 62조원(43%), 임산물 가공·제조업이 48조원(33%)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산림의 산림 생물다양성 보전 기능 가치도 증가세를 보인다. 국내 산림생물다양성 보전 기능의 가치는 2023년 기준 12조6000억원으로 2020년 평가액(11조6000억원)보다 1조원(8%) 증가했다. 산림생물다양성 보전 기능은 국내 바이오산업에 기여하는 산림유전자원 가치 등으로 평가한다.

◆‘숲가꾸기·산림순환경영’ 공익기능 질적 확대
산림청은 산림의 공익기능을 확대하는 정책을 세우고 있다. 경북도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미 산림 공익기능을 높일 수 있는 조례 등을 마련하는 등 ‘숲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제조건으로 공익기능의 원천인 산림면적의 감소 추세를 낮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정희 한국산림경영인협회장은 “산림의 다양한 공익기능이 적절하게 나타날 수 있도록 기능별 숲가꾸기를 제때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산불로 인한 산림자원 피해를 최소화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경제림에 매년 자라나는 나무부피(순임목축적)를 늘릴 수 있도록 산림순환경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림정책의 다변화도 요구되고 있다. 산림정책은 그동안 주요방향이었던 산림경영과 보존을 넘어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림휴양복지학회 이지현·박상철 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연구서에서 “산림의 경제적·공익적 기능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의 대형화, 휴양에 대한 국민적 수요 증가, 바이오경제 등 산림의 환경변화까지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두 연구원은 “산림의 경제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국산 목재 이용 촉진과 목재산업 활성화, 바이오 및 탄소시장, 산림복지서비스업 등 산림 관련 신성장 산업에 대한 정책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점차 대형화하는 산불 등 산림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산불 대응 협력네트워크 및 물적·인적 자원 동원 확대 등 재난통합관리체계 고도화가 필요하며 증가하는 산림복지 서비스 수요에 맞춰 도시숲, 도심 정원 확대를 통한 국민들의 산림 접근성도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김인호 청장은 “기후위기시대 산의 역할과 기능 비중은 더 커지고 있다”며 “산의 지속가능성 보전을 위해 숲가꾸기를 제때 추진하고 산불 및 산림병해충으로 인한 피해 최소화, 생물다양성 보전 강화 등을 위한 세밀한 산림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김인호 산림청장 “환경·생태 고려한 유연한 산림경영이 재난대응 해법”
“산은 환경·경제적 가치를 얻는 유형자산이자 불평등·지역소멸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무형자산을 담은 그릇입니다.”
김인호(61·사진) 산림청장은 “국토의 63%가 산인 우리나라의 ‘산의 가치’는 기후위기뿐 아니라 지역소멸 대응 등 당면한 과제를 풀 핵심 열쇠”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김 청장은 15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산의 가치는 그동안 환경·경제적 가치에 집중됐었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복지·사회문제 조절 기능,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런 기능과 가치를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지가 앞으로 산림정책의 방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산림은 6·25전쟁 이후 70여년간 약 30배의 양적 성장을 이뤄냈다. 녹화산업의 결과이다. 산의 부피가 커지면서 자산으로써의 활용 기대감은 커졌다. 산림재난 위험도도 함께 비례했다. 산림 양적 성장은 기후변화와 맞물리면서 산불의 일상화·대형화, 대형 산사태, 병해충이라는 ‘산림재난 삼중고’를 안겼다. 산림재난 대응은 산림 경영에 견주는 주업무가 된 배경이다.
김 청장은 “기후변화는 산림정책의 설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산림정책은 지속가능한 산림 경영뿐 아니라 기후위기와 재난, 국민 안전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산림의 생태적·경제적·환경적 가치를 담은 유연한 산림경영이 재난 대응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산림의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선순환 산림경영”이라며 “산림 숲가꾸기와 임도 정비, 계획적 벌채, 목재 이용 활성화로 탄소중립 실현 등 기후위기, 환경, 경제적 측면으로 모두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지금이 ‘나무의 시대’에서 ‘목재의 시대’로 가는 전환점이라고 했다. 그는 “‘산의 날’을 제정한 이유는 미래의 세대들에게 숲의 기능과 가치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미래 콘크리트’로 불리는 목재가 도시를 건설하는 주자재의 시대가 오는 만큼 산림정책도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세밀하게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생활권에서 숲을 즐길 수 있는 도시숲, 수목원, 정원 조성도 늘린다. 그는 “도시숲과 수목원, 정원 등 녹색인프라 확충은 도시 생활환경 개선, 기후위기 대응, 국민의 휴식과 건강증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자연기반해법으로 주요 의제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산림청은 올해 1248억원을 투입해 198개 도시숲을 새로 만들고 내년에도 도시숲 조성사업에 880억원을 들일 예정이다. 정원도시는 올해 8개소, 내년엔 12개소 늘리고, 생활정원은 올해와 내년 1000여개를 늘릴 방침이다.
김 청장은 조직 재편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김 청장은 “산림정책과 산림재난을 담당하면서 조직 업무의 양과 질이 달라졌다”며 “빠른 초동대처와 총력 대응을 위해선 조직 확대와 순발적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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