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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지만 헌법재판소를 둘러싼 소음 공해는 기세를 더해 가고 있다. 헌재 직원들은 단체로 귀마개를 사는 등 임시방편으로 소음을 견디고 있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10차 기일이 열린 지난 20일 오전, 헌재 앞에는 산발적인 1인 시위가 벌어졌다. 한 중년 여성은 성경과 손팻말을 들고 인도를 돌아다니며 “주여, 공산당 좌파들의 가면을 벗겨 달라”고 외쳤다.
정문 옆에서는 기자회견의 형식을 빌린 또 다른 시위가 벌어졌다. 사회자는 마이크를 쥐고 “지금 문재인 지지했던 연예인들 돌연사가 많다. 백신을 너무 많이 맞아서 길 가다가 죽기도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시법에 따르면 법원 100m 이내 집회·시위가 금지되나, 1인 시위나 기자회견은 허용된다.
오로지 소음 발생을 목적으로 의미 없는 소리를 내는 지지자도 있었다. 한 20대 남성은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얼굴이 인쇄된 팻말을 목에 걸고 헌재를 향해 목을 긁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이따금 헌재 본관을 향해 “형배야”“정신 차려” “대통령님 석방하라”고 소리쳤다.
귀마개도 무용지물…인신공격성 전화 빗발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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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직원들은 하루종일 이같은 소음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최근 일부 직원들은 견디다 못해 회비를 모아 3M 귀마개를 샀다고 한다. 업무를 볼 때 창밖에서 들리는 원색적인 소음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귀마개를 끼면 걸려오는 업무·민원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헌재에는 부서를 불문하고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다짜고짜 욕설부터 하는 전화부터 탄핵 변론기일 진행을 두고 “누구 마음대로 이렇게 했나”라고 항의하는 전화, “재판관을 바꿔 달라”는 전화, “대통령 탄핵에 대한 당신 입장을 말하라”는 전화 등 용건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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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헌재는 최근 홈페이지 조직도에 안내돼 있던 직원들의 이름을 비공개로 돌렸다. 전화를 건 지지자들이 조직도를 보고 특정 직원의 이름을 대며 “전화를 바꾸라”고 요구해서다. 특히 온라인에서 “헌법연구관 중에 화교, 중국인이 있다”는 가짜 뉴스가 퍼지면서 연구관의 출신 성분을 추궁하는 전화는 더 늘었다고 한다.
1인 시위는 이른 아침이나 밤에도 계속된다. 피켓을 든 지지자들은 이날 변론이 끝난 뒤 퇴근하는 직원들을 향해 “빨갱이 XX들”“빨리 자진 월북하라 XX 같은 것들”이라며 욕설을 섞은 고성을 질렀다. 헌재 앞을 지킨 경찰 앞에 버티고 서서 “인민 경찰 꺼지라”고 고함치는 지지자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근 상가 역시 매출 감소에 소음 피해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다. 헌재 건너편 카페에서 일하는 이모(20)씨는 집회 소음에 대해 “손님들도 들어오면서 ‘어? 이게 뭐야’ 하고 깜짝 놀랄 정도다. 주문을 받을 때 내용이 잘 안 들릴 때도 있다”며 “욕설이나 경찰을 비방하는 내용들이 특히 심하다”고 했다.
견디다 못한 헌재는 고소·고발을 예고했다. 지난 19일 언론 브리핑에서 “헌법연구관의 국적과 관련한 가짜 뉴스, 악성 댓글, 원색적 비난에 대해서 경찰에 수사 의뢰할 지를 논의하고 있다”며 “관련 증거와 자료를 수집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