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반구 맹주 노리는 中·印… “책임있는 대국” vs “민주주의 대안” [세계는 지금]

2025-10-11

‘글로벌 사우스’ 주도권 경쟁 본격화

中, WTO 특혜 포기 선언

국제규범에 부응·참여 자신감 내비쳐

“선진국, 개도국에 많은 관심 기울여야”

WTO 사무총장 “중국 리더십에 박수”

印, 中 개발모델과 차별화

南南무역·투자 등 협력 다변화 앞세워

‘하나의 미래’ 기치 개도국 연대 이끌어

자본·물량 경쟁 대신 가치외교로 보완

서방 “인도는 中 견제의 축”

트럼프 행정부 “印, 민주주의적 균형추”

美·日·濠 등 협력… 印太 내 영향력 확장

“개도국, 양국 활용 실리적 선택 가능성”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무대에서 인도와 중국은 개발도상국 국가들을 상대로 각각 별도의 외교 무대를 마련하며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개도국과 신흥국을 통칭) 리더십을 두고 경쟁을 벌였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특별대우 지위를 포기하며 ‘책임 있는 대국’ 이미지를 부각했고, 인도는 민주주의적 대안과 남남(南南) 협력(개발도상국 간의 협력)을 앞세우며 차별화에 나섰다.

두 나라 모두 세계 1·2위의 인구 대국이자 신흥 강국으로 개발도상국 대표를 자처해왔지만 이번 총회에서의 행보는 글로벌 사우스 내에서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함을 시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집권 이후 세계 무역과 다자주의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양국이 공동 전선을 펼 것으로 예상됐지만 병행 외교를 통한 영향력 경쟁 역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유엔 총회서 中·인도 모두 개도국 모아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계기 ‘글로벌 개발 이니셔티브’(GDI) 행사에서 “(중국은) 책임 있는 주요 개발도상국으로서 새로운 특혜를 추구하지 않겠다”며 WTO 협상에서 개발도상국에 주어지는 특별·차별적 대우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인 2019년 중국 등 경제력이 갖춰진 국가들이 개발도상국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무역 특혜를 받고 있다며 자발적 포기를 촉구해왔다. 중국은 이번 결정을 통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동시에 개혁 의지를 드러내며 체제 자신감을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리 총리는 “일방주의와 보호주의가 확산하는 가운데 개발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며,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필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라고 촉구했다. 그는 향후 5년간 2000개의 소규모 민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세계보건기구(WHO)와 협력해 보건 프로젝트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행사에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중국의 결정에 대해 “수년간 노고의 결실”이라며 “이 문제에 대한 중국의 리더십에 박수를 보낸다”고 평가했다.

같은 기간 인도는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외교장관 주재로 쿠바, 몰디브,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자메이카 등 20여개국을 초청해 별도의 회동을 열었다. 인도 측은 이를 ‘마음이 맞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 고위급 회동으로 규정하며 민주주의적 대안과 남남 협력을 전면에 내세웠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분쟁, 기후 재난, 무역 불안정 등을 지적하면서 “생산을 민주화하고 경제 안보를 강화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경제 관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정 공급자나 시장에 의존하지 않는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중국의 제조업 허브 역할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직은 中 원조 규모에 못 미치는 인도

중국과 인도의 대결은 브릭스(BRICS)와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협의체) 구도에서도 이어진다. 중국은 지난해 브릭스에 이란,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을 포함하며 세력을 확장했지만, 인도는 확대 속도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인도는 쿼드를 통해 미국, 일본, 호주와 협력하며 인도태평양에서 중국 견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인도의 전략은 중국식 개발모델과 선을 긋는다. 인도는 민주주의 가치를 내세워 중국의 권위주의 모델과 차별화하면서 남남 무역·투자·기술 협력을 확대해 신흥국 사이에서 ‘민주주의적 리더십’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사우스의 다수 국가가 서방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가운데 인도가 ‘대안’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인도는 2023년 1월 글로벌 사우스 정상회의를 주도하며 ‘하나의 지구, 하나의 가족, 하나의 미래’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1947년 독립 직후 반식민주의와 비동맹 노선을 바탕으로 제3세계 연대를 이끌었던 전통을 계승하면서 민주주의를 핵심 브랜드로 삼은 셈이다.

인도는 1964년 시작된 ITEC(인도 기술·경제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역량 강화 연수와 기술 지원을 제공해왔고, 2000년대 이후에는 IDEAS(신용한도 제공), 인도·유엔 개발 파트너십 기금 등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확충했다. 최근에는 사이버 안보와 에너지 인프라, 의약품 지원까지 범위를 넓히며 개발협력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인도가 민주주의와 남남 협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중국과의 물량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가치 외교로 보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균형 있고 지속 가능한 경제 교류를 위해 남남 무역, 투자, 기술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인도가 자금력 대신 네트워크와 가치 공유를 통해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국립외교원 분석에 따르면 인도의 공적개발원조(ODA)는 중국의 약 2.5% 수준에 불과하다.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인도·아프리카 포럼 서밋’도 2015년 이후 중단된 상태다. 정치적 수사와 실제 자금 투입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중국은 아프리카협력포럼(FOCAC),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WTO 개혁을 선언한 이번 조치 역시 중국이 단순히 개발도상국 이미지를 벗어나 국제 규범 형성에 참여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인도 두 나라가 모두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성을 자처하면서도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고 분석했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어느 한쪽에 줄서기보다 양측 모두를 활용하는 실리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며 “인도와 중국의 경쟁은 협력보다는 차별화 전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서방 ‘중국 견제’에 인도 중요성 여전

미국 등 서방의 시각에서 인도는 ‘중국 견제의 축’으로 중요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유엔 총회 기간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인도는 인도태평양에서 핵심 파트너이며, 인도가 바로 인도태평양의 ‘인도’”라고 전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쿼드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했고, 올가을 인도에서 쿼드 정상회의 개최가 예정돼 있다.

미국과 인도의 관계가 최근 서먹해지긴 했다. 지난 8월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의 참석 계획을 철회했다고 보도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 여부는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빌미 삼아 인도에 보복 관세를 부과했고, 양국 간 무역협상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파키스탄과 관계 복원을 시도하면서 인도의 불만을 사고 있기도 하다. 그는 5월 인도·파키스탄 충돌 당시 자신이 관세 압박을 통해 휴전을 중재했다고 주장했지만 인도 측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인도를 중국 견제의 축으로 규정하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국무부 당국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인도를 민주주의적 균형추로 보는 시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외신은 “인도는 미국과 미묘한 전략적 협력을 유지하는 한편 글로벌 사우스 무대에서는 중국과 직접 경쟁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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