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과 베이징, 재결합 신호
열병식이 보여준 혈맹의 귀환
가격 계산 들어간 동맹 현실
한국 외교, 균형 찾아 나가야
최근 평양과 베이징의 거리가 다시 좁혀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년여 만에 중국을 찾았고, 북·중 간 고위급 교류도 뚜렷이 늘었다.
지난달 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3기 최대 정치 이벤트인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리(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김 위원장은 단연 눈에 띄었다. 열병식이 열린 톈안먼광장의 망루(성루)에 시 주석과 나란히 앉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다른 나라 정상 및 고위 관계자 행렬을 이끄는 듯 이동하는 모습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중국은 권력 서열 2위 리창 국무원 총리를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경축 행사에 파견했으며, 지난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된 열병식에서 리 총리는 김정은 옆에 자리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북한 체제의 안정을 다시 보증하겠다는 중국의 메시지로 읽힌다.
중국은 대북 제재 이행에서도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북·중 교역액은 약 16억5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8%가량 늘었다. 국경 지역 역시 변화가 감지된다. 최근 단둥의 중·조 우의교를 지나는 트럭이 부쩍 증가했다. 외신은 위성 이미지를 분석한 결과 단둥 일대 트럭 활동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전했다. 이는 북한을 다시 완충 지대로 복원하면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도하는 미국을 견제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중국은 체제 유지의 안전판이다.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이 언제까지나 지속하지는 않을 것인 만큼 중국의 지원은 여전히 중요하다. 식량과 연료 공급, 기술 교류 등에서 북·중 협력이 확대되고 있으며, 양국은 이념적 연대를 복원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잇달아 중국 측 행사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중·러의 연대가 구조적으로 강화되는 반면 한·미·일 공조는 여전히 정치적 구호에 머물고 있다. 한국은 북핵·대(對)중 외교 모두에서 주도권을 잃은 채 주변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입장에 머물러 있다.
그러는 사이 미국의 태도는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동맹 가격 재정산’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가 다시 시작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지켜주는 나라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공개 발언했다.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도 부정하지 않았다. 가치 동맹이었던 관계가 언제든 ‘계산의 동맹’으로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경제 분야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진다.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한국산 전기차와 반도체에 불리한 규정을 잇달아 도입했다. 지난달 미국 조지아주에서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대규모 한국인 구금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변화는 일시적 조정이 아니라 구조적 흐름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에도 비슷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중국은 이 틈을 파고들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의 문제는 아시아인 스스로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실상 미국 중심의 동맹 구조에서 벗어나라는 메시지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의 지형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북쪽은 더 강하게 묶이고, 태평양 건너편은 점점 멀어진다. 지정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는 북한과 중국이지만, 현실의 신뢰는 가장 약하다. 반대로 바다 건너 미국은 동맹이지만 이해의 간극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애쓰지만, 주변의 변화 속도가 더 빠른 듯하다.
이제 한국 외교가 직면한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의 이웃은 누구인가.
북쪽의 이웃은 동맹이 되기 어렵고, 멀리 있는 동맹은 언제든 마음을 바꿀 수 있다. 가까운 나라는 믿기 어렵고, 믿었던 나라는 멀어지는 상황이다.
결국 남는 것은 우리의 선택일 것이다. 누구를 이웃으로 만들 것인가, 어떤 관계를 지켜갈 것인가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 국익의 원칙을 분명히 세우고, 그 위에서 협력과 거리 두기를 조정할 때 진정한 균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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