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저비용 생성형AI 깜짝 발표
트럼프 대규모 투자계획에 ‘한방’
美 수출통제·규제 완화 대응 전망
충격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
지난주 미국 워싱턴엔 중국에서 온 두 가지가 화제였다. 첫째는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에 등장한 판다 두 마리다. 지난해 중국에서 온 자이언트판다 바오리(3세·수컷), 칭바오(3세·암컷)가 3개월의 격리를 마치고 지난달 24일(현지시간) 공개됐다. 일요일이었던 26일 동물원 근처를 지나다 바글바글한 인파를 보고 판다의 인기를 실감했다. 1972년 이 동물원에 처음 중국이 보낸 판다 한 쌍은 미·중 데탕트(긴장 완화)의 오랜 상징이었다.
둘째는 중국 저비용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Deepseek)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하원 대상 연설에서도, 의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싱크탱크 포럼에서도 딥시크가 화제였다. 중국과의 기술 경쟁, 특히 AI 경쟁은 이제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워싱턴의 촉각을 사로잡는 이슈가 됐다.
워싱턴 싱크탱크 신안보센터(CNAS)가 지난달 발간한 트럼프 신행정부에 대한 정책제안서에 따르면 미국의 가장 시급한 정책 목표 중 하나는 중국과 충분한 AI 기술 발전 차이를 확보하는 것이다. AI가 동시대의 안보·경제·산업을 재편할 ‘게임체인저’가 된 상황에서 당연한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중요성을 잘 아는 듯 취임 직후 챗GPT 개발사 오픈AI, 소프트뱅크, 오라클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놓고 이들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5000억달러(약 728조원) 규모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발표했다.
그런데 중국이 보기 좋게 한 방 먹인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대표 벤처투자가 마크 앤드리슨은 1957년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인공위성을 발사해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를 빗대 “딥시크 R1은 AI 분야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라고 표현했다.
미국은 늘 그렇듯 ‘기술탈취론’을 꺼내며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거대기술기업)들은 딥시크의 자사 데이터 무단 수집 시도를 목격했다며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29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우리로부터 훔치거나, 빼앗거나, 우리가 썼던 것을 활용해 더러운 값싼 물건(딥시크)을 만들었다”며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공교롭게 30일 워싱턴에서 정책설명회가 예정돼 있던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백악관, 의회 관계자들 앞에서 ‘딥시크 충격’을 AI에 대한 대규모 투자 필요성을 역설하는 근거로 활용했다.
다음 수순은 추가 수출통제와 규제 완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 당국이 지금까지는 수출통제 대상이 아니었던 저사양칩으로 수출통제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의 파괴적인 AI 규제 철회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자화자찬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2023년 AI규제 행정명령은 혁신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AI 윤리를 세운 것으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마저 사라질 전망이다.
비슷한 광경은 화웨이가 스마트폰 ‘메이트’ 시리즈의 신제품을 발표할 때도 본 것 같다. 하지만 충격의 정도는 스마트폰과 AI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미·소 경쟁에서 승리한 경험에서 민주주의 체제와 자유로운 시장 원리의 승리에 확신을 갖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이는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이해도 안 되는 싸움이다. 국가주도 투자, 권위주의 체제에서 가능한 대규모 데이터 수집과 기술탈취로 일군 ‘중국식 기술 발전’에 따라잡히는 것을 미국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딥시크 쇼크의 경과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스푸트니크 쇼크가 1950년대에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듯 결코 지나가는 바람일 수는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취임식에 초대해도, 판다가 돌아와도 이제 적어도 기술 경쟁에 관한 한 미·중 데탕트는 불가능해 보인다. 오픈AI가 워싱턴 당국자 등을 대상으로 낸 보고서는 “반도체, 데이터, 에너지, 인재(talent)가 (중국에 대한) AI 승리의 열쇠”라고 적었다. 미국은 이 네 분야에서 중국을 집요하게 괴롭힐 것이다. 한국도 전략 분야인 이 넷을 둘러싼 미·중 경쟁에서 계속 시험에 들어야 할 것이다.
홍주형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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