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이 콜롬비아 출신이라 ‘보고타’를 더 반가워 하셨어요. 제가 스페인어를 잘했는지 못했는지 벼르고 계실 겁니다. 많이 보고싶어 하세요(웃음)”
농담삼자면 송중기 장모도 개봉을 ‘벼르고’ 있었던 영화다. 23일 오후 송중기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보고타’는 1997년 IMF 직후, 새로운 희망을 품고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 보고타로 향한 국희(송중기 분)가 보고타 한인 사회의 실세 수영(이희준), 박병장(권해효)과 얽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취재진들을 맞이한 송중기는 비교적 따뜻한 이날의 날씨처럼 해사한 미소와 함께 영화 개봉 소감을 전했다. 코로나 19로 촬영 중단 사태를 겪은 ‘보고타’가 세상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의미였다.
“콜롬비아에서 체류한 지 세 달 조금 안 됐을 때 콜롬비아 정부에서 나가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갑자기 촬영이 중단돼서 (스케줄이) 붕 뜨니까 저는 ‘빈센조’를 찍었고, 다른 분들도 다양한 작품을 시작했어요. ‘이러다가 작품이 엎어지는 거 아닐까’하는 생각이 가장 화두였고, 걱정도 되고 조바심도 났죠. (영화가 개봉해서) 정말 감개무량 합니다”
송중기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꿈꾸는 청년 국희 역을 연기했다. 국희는 IMF 이후 도망치듯 떠난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전 재산을 빼앗기고 인생의 마지막 남은 희망을 붙잡기 위해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인물. 그는 19살부터 20대, 30대까지의 변화를 작품에서 그려냈다.
“콘트라스트(대조)를 줘야하니 욕심이 났어요. 그런데 욕심이 나면 한번은 고사를 해야 해요. 19살 연기로 시작을 했는데 제가 그때 34살이라 민망하더라고요. 그거 때문에 ‘아닌 것 같다’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서사를 받아들이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었어요. ‘나이가 들면 누가 시켜주지도 않는데 나이 더 들기 전에 하자’ 싶었어요. ‘스물 둘, 셋을 표현해야 하는데…민망하지만 표현해보자’ 했죠”
영화는 실제 콜롬비아에서 올로케이션 방식으로 촬영됐다.생생한 현장이 담겼지만 그만큼 배우들의 노력도 필요했다. 송중기는 현지 적응을 위해 본인이 함께하지 않아도 되는 스태프 답사까지 따라갔다.
“콜롬비아에 2019년 처음 넘어갔어요.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매니저 없이 저 혼자 스태프들을 따라간 거죠. 의상 실장님, 분장 실장님과 상황을 보고 ‘머리를 짧게 밀어버립시다’라고 했고, 살면서 뚫어본 적 없는 귀를 현지에서 바로 뚫었어요. 의상도 빨간 파지에 파란 티셔츠(웃음). 희준이 형도 그때 같이 가서 콧수염을 봤을 건데, 당시 레퍼런스 삼을 만한 게 없으니까 다들 막막한 심정으로 갔어요. 그게 실제로 많이 도움됐고요”
그가 촬영하던 보고타는 고산지대로 꼽히는 지역이다. 고산병을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했을 거다.
“보고타가 2900m정도예요. 첫 촬영 두 번째 날이 3000m가 넘는 1구역에서 오토바이를 쫓아가는 장면이었어요. 감독님이 ‘센스있게’ 그걸 첫 촬영으로 잡아서 하루종일 뛰었죠. 그런데 편집하니 5초 만에 끝나더라고요. 아무튼 고산병은 초반에만 있었고 금방 적응해서 지내는 데에도 문제는 없었어요. 또 워낙 한인 사회가 잘 되어 있고 음식도 잘 맞았어요”
직접 남미로 향한 만큼, 현장감을 잘 살리고 싶었던 송중기다. 스페인어를 열정적으로 배웠던 그는 기존 시나리오에 적힌 국희 캐릭터보다 더 뜨겁게 인물을 표현했다. 이 모든 변화는 송중기의 기지도 있지만 현지 분위기도 있었다.
“시나리오에 있떤 캐릭터보다는 4-5배 이상 뜨거워졌어요. 현지 분위기도 한 몫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길에서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추는데 그런 바이브가 너무 좋았어요. 스페인어 배우는 것도 너무 재밌었고요. 영화에서는 제가 스페인어 하는 장면이 많이 편집됐지만 공개된 것만 봐도 애드리브를 한 게 많아요. 아무래도 현지 바이브에 스며든 게 아닐까요”
최근 송중기는 영국 배우 출신 케이티 루이스 사운더스 사이에서 둘째를 득녀했다는 희소식을 전했다. 그간 작품 활동에 열정을 쏟았던 그는 한 명의 가장으로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첫째 아이 낳고 1년을 쉬었어요. 아이 낳기 전에는 저 스스로를 떠밀면서 살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예전보다 여유가 생겼어요. 아무래도 둘째도 생기고 하니 그 시간이 되게 좋아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가열차게 작품만 하던 삶과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조금 더 숨을 고르면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중요해요. 아이는 금방 크거든요. 제가 달려왔던 삶과는 다르게 숨고르기 하면서 가족들과 시간 보내면서 지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태까지 저를 푸시했다기보다는 뭔가 주어졌을 때 책임감이 큰 성격이라 그런 것 같아요. 벼랑 끝에 내모는 성격은 아닙니다.(웃음)”
한편 ‘보고타’는 오는 31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