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 활용도 높은 소재임에도
마약이라는 사회적 편견 있어
선입견이 본질을 흐리는 점에서
인간사회와 닮아 있다고 느껴
◇ 안동포를 아시나요?, 안동포와 대마 산업의 현대적 해석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대마를 활용한 산업이 이어져 왔다. 특히 ‘삼베’나 ‘안동포’라 불리는 대마 천은 오랜 세월 우리 생활 속에 녹아들며 조상들의 지혜와 고유한 가치를 담아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 삼베 문화는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마는 친환경적이고 내구성이 뛰어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마약으로 인식되어 활용에 큰 제약을 받아왔다. 산업화 이후 저렴한 수입 섬유가 널리 보급되면서 전통 섬유 산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대마 재배지와 삼베 장인들도 점차 자취를 감추어 갔다. 보존을 위한 노력조차 법적 제약에 부딪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반면,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등에서는 대마가 친환경 자원으로 인정받아 난치병 치료제, 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해 왔다. 이러한 차이는 국가 차원에서 민간과 함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이어 온 데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대마를 활용한 전통 산업을 부흥시키려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2018년 11월, 국회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의료용 대마 사용을 승인했고, 2019년부터 의료용 대마 사용은 합법화되었다. 이후 2020년 7월, 안동시는 국내 최초로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대마가 친환경 자원으로 재조명되며 그 가치를 널리 알리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더불어 안동포와 같은 전통 직물이 예술과 결합해 시대와 세대를 잇는 새로운 방식으로 부활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안동에서 만난 송나래 작가는 대마를 재료로 한 작품을 통해 전통과 현대를 잇고, 자신의 방식으로 대마의 가치를 널리 알리려는 노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송 작가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가치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며 독자적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을 되살리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가치를 현대의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의미를 더해주는 과정도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과정은 전통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큰 공감과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작품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 작품의 재료로 만나게 된 대마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한 송나래 작가는 예술을 통해 환경과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자 오랜 시간 고민해 왔다. 사물의 본질에 집중하는 성향 덕분에 대마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초기에는 이 식물을 부정적인 대상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차츰 대마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러한 선입견이 사라지고, 오히려 대마가 운명처럼 다가왔던 순간을 회상했다.
송 작가는 대마라는 식물이 우리 사회에서 부당하게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녀는 대마를 자연물로서 바라보며, 인간 사회에서 대마에게 씌워진 부정적인 낙인이 오히려 인간 사회와 닮아 있다는 생각에 큰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대마에 대해 알게 되면서, 단순히 부정적인 소재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선입견이 본질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이해가 대마와 그녀의 작업을 연결짓는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다고 덧붙였다.
“제가 주로 작업해 온 실크스크린은 화학약품을 자주 써야 했거든요. 작업을 할수록 손끝이 벗겨지고, 따갑기까지 하니, 계속 이어가기 어렵더라고요.” 송 작가는 화학 성분의 잉크와 용제들이 피부에 심각한 자극을 준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손끝에 피부 질환이 생기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작업 중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는지도 모른다. 환경과 작업자 모두에게 안전한 재료를 찾아 나선 그의 고민은 결국 대마라는 친환경 재료로 이어졌고, 작업에 대한 그의 시선은 한층 넓어지고 깊어졌다.
이 모든 고민을 바탕으로 송 작가는 작업자와 환경 모두에 해가 되지 않는 재료를 찾던 중 대마를 접하게 되었다. 대마는 단순히 섬유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건축 자재로도 높은 활용 가능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송 작가는 특별히 주목하게 되었다. 특히, 대마의 속대 껍질에 석회와 물을 섞어 만든 반죽을 사용하는 헴프크리트 기법이 건축 자재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 친환경적 특성에 대해 송 작가는 인상 깊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헴프크리트는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콘크리트와 달리 지속적으로 이산화탄소를 격리하는 특성을 지니며, 친환경적 자재로 평가받고 있다. 완전한 콘크리트 대체제는 아니지만, 통기성과 습도 조절, 단열에 뛰어나 독성이 없는 대체 자재로 널리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송 작가에게 대마라는 재료를 예술로 해석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 주었고, 그녀는 이 소재를 통해 작품과 환경 간의 조화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 대마로 다시 피어나는 전통
안동은 대마 재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마 수급 또한 용이하다. 이러한 이유로 송나래 작가는 대마를 소재로 한 새로운 예술적 실험을 시작하기 위해 안동으로 이주했다. 서울에서는 주로 실크스크린 작업에 집중했으나, 안동으로 이주한 후 다양한 시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최근 송 작가의 창작 활동은 대마라는 소재를 단순히 활용하는 것을 넘어 자연과 순환을 염두에 둔 예술의 한 형태로 확장된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작품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새기기 위해 송 작가는 현재 농부들과 소통하며 어깨너머로 대마 농사에 대해서도 배우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직접 대마를 재배해 창작에 필요한 재료를 자급자족할 계획이다.
송 작가는 대마가 가진 자연적 가치를 살리며 헴프크리트를 활용한 오브제와 가구를 제작하고 있다. 안동 가일서가에서 열린 첫 개인전 <셀, 픽셀 되기>에서는 헴프크리트 작품을 선보이며 대마가 예술에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을 통해, 송 작가는 사람들이 대마에 대한 편견을 넘어 이 소재의 다양한 가능성에 주목하길 바라고 있다. “최근 들어 대마를 소재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이 많아지는 추세가 보여서 반가워요. 이런 흐름을 보며 대마가 단순한 재료를 넘어 환경에 대한 생각을 담아내는 매개체로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각자의 해석과 시선으로 대마를 다루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이 소재의 본연의 의미와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대마는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각자의 철학과 관점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매력적이죠. 사람들이 대마가 가진 환경적 유용성과 다채로운 가능성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저는 대마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생각해요.”
송 작가는 자신만의 철학을 담아 대마를 다루면서도, 다른 예술가들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대마를 해석해 나가는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가 자신의 예술 여정에 큰 영감을 주고 있다면서, “대마를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재료나 기법을 넘어서는 환경과 순환의 메시지예요. 다양한 기법으로 대마를 다루는 예술가들이 많아지면서 대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점차 개선되길 기대하고 있어요. 물론, 대마를 활용한 방법도 중요하지만, 이 소재가 전할 수 있는 철학과 이야기가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품을 만들 때에도 단순히 기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소재가 전하는 본질적인 메시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대마가 환경적으로 얼마나 가치 있는 자원인지 자연스럽게 느끼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 전통을 넘어, 미래를 향한 도약
필자는 지금까지 많은 청년들을 만나왔다. 그들의 공통적인 고민 중 하나는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라는 막연한 불안감이었다. 대부분은 융복합적 사고와 다양한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답답함이었다.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적 방식에 갇히기보다 개념을 자유롭게 탐구하고, 한계를 허물어야 새로운 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
송나래 작가는 이러한 청년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녀의 예술은 단순히 작품을 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념과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녀는 특정 재료나 기법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다. “작가,” “디자이너,” “공예가” 등으로 분류되지만, 송 작가는 그 어느 하나에도 치우치지 않은 채 이 모든 경계에 서 있다. 자신을 한 가지로 정의하거나 구분 짓는 것을 거부하며, 예술적 표현 방식 역시 어떤 재료나 기법에 국한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은 대마를 사용하지만, 향후에는 더 넓은 범위의 식물 소재나 자연 재료로 확장할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녀는 열린 결말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소재를 자유롭게 탐구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송나래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은 단순한 미적 표현을 넘어서,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깊은 울림을 목표로 한다. 전통을 넘어 미래로 도약하는 과정에는 경계를 넘나드는 도전이 필요하다. 송 작가의 작업은 그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험적 태도로 새로운 예술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이미나 (청년활동연구가/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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