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불법계엄은 누군가에겐 새로운 꿈을 꾸게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마르크스 경제학이 왜 중요한지 잘 알진 못했다”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3학년생 김선아씨(22)도 그랬다. 불법계엄 이후 한국 사회에 대두된 극우 파시즘을 바라보면서, 마르크스 경제학이라면 이를 후기 자본주의의 징후로 충분히 설명해내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서울대엔 이미 마르크스 경제학이 죽어 있었다. 지난해 여름 계절학기부터 마르크스 경제학 과목들이 개설되지 않았다. 자본론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김수행 경제학과 교수가 퇴임한 2008년 이후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칠 후임 교수는 채용되지 않았다. 이후 시간 강사가 ‘정치경제학입문’ ‘마르크스경제학’ 등 마르크스 경제학 3과목을 맡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이후에도 총 100여명의 수강생이 듣던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들은 이제 모두 자취를 감췄다. 지난 15년간 해당 과목들을 강의해온 강성윤 강사의 임용 여부도 불투명하다. 김씨는 얼른 학우들에게 현 상황을 알렸고 지난 15일엔 ‘서울대학교 내 마르크스 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서마학)’을 꾸렸다. 김씨를 2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2·3 불법계엄 사태 이후 학교 내 마르크스 경제학 과목을 찾아보던 김씨는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강 강사가 올린 글을 읽었다. 경제학부에서는 매 학기 초 학부 교수들로 구성된 교과위원회를 열고 계절수업과 다음 학기의 개설과목을 결정하는데 ‘교과과정 운영과 강의 수요·공급상황’을 이유로 마르크스 경제학 과목의 개설 필요성이 불인정됐다는 소식이었다. 그중 ‘정치경제학입문’ 수업은 계절학기에 운영되기에 학부의 별도 재정부담이 없음에도 ‘교양과 필수과목의 중점적 개설’을 이유로 개설되지 않았다고 했다. 강 강사는 마르크스 경제학 대신 주류 경제학 수업을 맡게 됐다. 김씨는 “서울대 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전공자가 강 강사뿐인데 그에게 수업을 맡지 말라고 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맥을 끊어버리려는 게 아니냐는 강사의 말이 크게 와닿았다”고 했다.
김씨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수업을 듣지 못한 채 졸업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달 초 김씨는 마르크스주의에 관심 있는 학우들에게 오는 여름 계절학기 과목 수요조사에 참여해달라고 독려했다. 그는 “수요가 없으면 폐지하자는 것이 경제학부의 논리였기 때문에 학생들의 수요가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며 “조사 결과 다른 과목과 비교해 수요가 높았음에도 경제학부가 이를 무시하는 것을 보면서 작정하고 마르크스주의 과목을 폐지하려는 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김씨의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재 ‘서마학’에는 7명이 모여있다.
서마학은 대자보에서 ‘대학은 수요에 따라 지식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며 ‘수요가 존재함에도 개설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수요가 없다고 해서 학문을 폐지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김씨는 “대학이 수요-공급 상황만 따져 운영된다면 대학의 존재 목적을 상실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대학은 교육 기관으로서 지식의 생산과 전달을 한다는 점에서 학문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근본적인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학 사회가 가진 학문적 편향성 때문에 어떤 과목이 배제되면 그 학문의 생산은 외주화될 수 있다”며 “그렇다면 대학이 있을 이유가 무엇이 남는가”라고 했다. 김씨는 현재 학교 외부에서 자본론 읽기 모임 등에 참여하며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김씨는 이 문제를 교수와 강사 간의 불균등한 힘의 문제로도 해석했다. 그는 “개설할 교과목은 정교수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이기에 강사들은 참여할 권한이 없다”며 “오는 5월 강사 신규 임용이 있는데 학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를 뽑지 않으면 사실상 학교에서 마르크스를 배울 길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이 문제가 결코 서울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학문이 생산되는 이유는 세상을 복합적으로 드러내고 기술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며 “마르크스주의가 대학에서 재생산되지 않으면 더는 세상도, 일상도 이 언어와 관점으로 해석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대가 가진 상징성 때문에 (폐지가) 다른 대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이 위험성에 공감하는 학내외 시민 총 2157명이 27일 오전까지 서마학의 연서명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