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와 ‘킹 오브 킹스’ 열광 비결은 혼종성의 힘

2025-07-17

“9살 딸과 11살 아들이 있는 44살 아빠입니다. 금요일마다 가족끼리 영화의 밤을 갖는데 넷플릭스에 이 애니가 추천 영화로 뜨더군요. 난 K팝이 뭐냐고 아내한테 물어봐야 할 정도로 잘 몰랐어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 우리 네 식구가 완전히 빠졌어요. 훌륭한 영화고 음악은 더 좋아요! 노래 다시 들으러 여기 온 겁니다.”

30대~50대 서구 남성, ‘케데헌’에 열광

어느 미국인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대표곡인 ‘골든’의 유튜브 영상에 단 최근 댓글이다. 흥미롭게도 이와 비슷한 영어 댓글이 한둘이 아니다. K팝 문외한인 30대~50대 외국 남성인데 아이 때문에 같이 보다가 심지어 “울었다”라거나 “K팝 팬이 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K팝이 해외에서 청소년과 여성 팬을 넘어서서 더 광범위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할리우드는 K팝 애니 만들고

한국은 예수 애니 만들어 성공

양쪽 다 혼종성이 성공한 사례

위기론의 K컬처 전환점 삼아야

‘케데헌’은 이제 큰 문화현상이 되고 있다. 영화 속 가상의 아이돌 그룹들이 부른 노래들이 빌보드 글로벌 차트 1위를 포함해 각종 현실 음원 차트를 휩쓸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이 가상 아이돌 그룹들의 댄스 커버와 코스프레가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국내 반응을 보면 “김구 선생님 보고 계십니까! K컬처의 승리”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소니픽처스(일본 소니그룹의 미국 자회사)가 만들었는데도 김구 선생을 찾나?” “결국 돈 버는 건 저들인데 재주는 곰이 넘고…” 하는 쪽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한 쪽으로만 볼 수 없는 게 ‘케데헌’ 돌풍의 중요한 점이다.

우선 ‘재주는 K컬처가 넘고 돈은 할리우드 자본이 챙긴다’는 냉소에 대해서는 10년 전에는 한국이 마블 ‘어벤져스’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기 위해 돈까지 썼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다. 당시 문체부·서울시 등이 총출동해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의 서울 로케이션을 유치하면서 “촬영 지원과 관광 활성화를 위한 MOU” 체결식도 거하게 열고 교통 통제도 해주고 한국 촬영 비용의 30%를 환급해 줬다.

그런데 ‘케데헌’은 한국 정부가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어벤져스’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서울의 북촌 등 명소를 선보이고 매듭·갓·민화 같은 전통 모티프를 멋지게 활용한 아이돌 의상을 묘사해 한국 관광과 문화 소비 욕구를 북돋운다. 게다가 주요 시청자가 미래 소비를 지배할 어린 세대다. 한편, 앞서 언급한 서구 아빠들의 고백처럼 새로운 K팝 팬을 유입하는 효과도 크다. 한마디로 외국 자본과 한국 양쪽이 ‘윈-윈’하는 양상인 것이다. ‘어벤져스’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이제 이쪽에서 부탁하지 않아도 할리우드 자본 쪽에서 알아서 소재로 삼을 만큼 K컬처가 세계적으로 ‘핫한’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국뽕 한 사발’ 걸치고 끝낼 일은 아니다. 이 영화를 한국 자본이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시사점이 있다. 한국 제작사의 규모와 플랫폼의 부재 등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것도 신경 쓸 부분이긴 하지만, 반대로 이 영화가 오히려 한국 자본으로 만들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일각의 평도 귀 기울일 만하다.

그와 관련해 뉴욕타임스 리뷰를 보자. 이 리뷰는 케데헌이 “매력적이고, 재미있고, 예술적으로 강렬한 독창적인 세계관”의 영화라고 평하며 “이 영화가 가장 웃긴 순간은, K팝부터 K드라마까지 고도로 제조된 대중문화를 꼬집을 때”라고 덧붙였다. K팝이 공장 제조식이고 K드라마가 전형적이라는 비판은 그간 서구에서 종종 있었던 것으로 한국인으로서 썩 기분 좋진 않으나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는 사실이다. ‘케데헌’은 남자 아이돌의 전형적인 구성과 포즈, K드라마의 클리셰 장면인 슬로모션 등을 귀엽고 유머러스하게 과장함으로써 K컬처에 대한 거부감보다 호감을 주지만 그럼에도 풍자성을 띠고 있다.

영화의 내용 또한 그렇다. ‘케데헌’은 자신의 불완전한 정체성을 숨겨왔던 주인공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내보이며 거듭나는 스토리다. 디즈니 명작 ‘겨울왕국’(2013)과도 상통하는 고전적이고 보편적인 주제이지만, 동시에 대중에게 외모부터 태도, 말 한마디까지 검열당하며 언제나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K팝 아이돌의 현실과 그에 대한 위로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K컬처에 대한 깊은 애정과 비판적 시각이 함께 담긴 덕에, 최근 들어 ‘한계에 봉착했다’는 위기론이 나오는 K컬처 산업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매기 강 감독 등 한국계 아티스트가 대거 참여한 외국 회사의 제작으로 외부인과 내부인의 시선이 균형 잡힌 덕분이다. 한국에서 만들었다면 이게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 영화는 어두운 사회 현실과 비판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성인 영화에는 강하지만, 전체 연령가 영화는 신파로 흐르는 경향이 강하다. 유머와 감동을 절묘하게 배합한 가족영화는 여전히 할리우드가 강하다. 하지만 할리우드 또한 최근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에서, ‘케데헌’은 K컬처를 모티프로 사용함으로써 최근 디즈니식의 억지스럽고 교조적인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가 아니면서도 서구 백인 중심 서사를 자연스럽게 벗어났다는 찬사를 듣는다. 이것이야말로 하이브리드, 혼종의 힘이다.

한국적인 건 없는 ‘킹 오브 킹스’

최근 한국에서도 개봉한 한국 자본 애니 ‘킹 오브 킹스’의 북미에서의 성공도 상기해볼 만하다. 장성호 감독이 이끄는 한국 제작사 모팩스튜디오가 만든 이 애니는 지난 4월 북미에서 부활절 시즌에 개봉해서 첫 주 박스오피스 2위 등 예상외의 큰 인기를 얻으며 한국 영화 북미 흥행 최대 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에는 ‘한국적’인 것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리고 새로운 것도 별로 없다. 주일학교 교과서 수준으로 정석적인 그리스도의 생애 이야기를 펼치는데, 자연스럽게 감동이 가도록 퀄리티 있게 구현한 것이다. 그런데 그간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고전적인 예수 영화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으로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대담하게 만든 것이 이런 콘텐트에 목말라하던 미국 관중에게 크게 어필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 또한 한국 스튜디오가 만든 혼종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탈식민주의 학자 호미 바바는 ‘제3의 공간’인 혼종성에서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이 출현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혼종적 정체성은 역동적이고 새롭고 혁신적인 무언가를 탄생시킨다고 했다. ‘케데헌’과 ‘킹 오브 킹스’의 성공은 이런 혼종성의 힘을 깨우쳐 매너리즘에 빠진 K컬처 산업의 전환기를 만들 촉매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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