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양자강(長江) 유역의 강소성 도시를 여행할 경우 맛 깨나 안다는 중국 지인이 꼭 먹어보라며 추천하는 요리 중 하나가 시어찜(淸蒸鰣魚)이다. 얼마나 맛있기에 저럴까 호기심도 일지만 그에 앞서 도대체 시어(鰣魚)가 어떤 생선이기에 그토록 호들갑일까 궁금해진다.

우리한테는 낯선 이름의 물고기이지만 옛날 중국에서 시어는 엄청 유명했던 생선이라고 한다. 먼저 이름부터 특별한 것이 물고기 어(魚)변에 때 시(時)자를 써서 시어인데 특정 계절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생선, 4~5월에만 반짝 잡혔던 희귀한 물고기여서 시어라는 것이다.
맛이 좋기도 하지만 아무 때나 맛볼 수 없는 생선이었기에 더욱 귀한 대접을 받았고 그런만큼 예로부터 시어를 팔진미(八珍味) 중의 하나라고 했다. 팔진미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청나라 때는 보통 곰발바닥인 웅장(熊掌), 낙타 등인 타봉(駝峯), 사슴꼬리 녹미(鹿尾), 바다제비 집 연와(燕窩), 상어 지느러미 샥스핀(魚翅), 바다의 인삼인 해삼(海蔘), 물고기 입술(魚脣)과 함께 시어(鰣魚)를 꼽았다.

시어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옛날부터 맛있다고 소문났던 4대 미어(美魚) 중 하나에도 포함됐다. 이를테면 시경에 나오는 이수의 방어, 진(晉)나라 재상이 벼슬도 버리고 낙향해 먹었다는 송강의 농어, 고대로부터 유명했던 황하의 잉어와 함께 양자강의 시어가 그것이다.
시어에 대한 찬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국 4대 미녀가 양귀비 서시 왕소군과 삼국지에 나오는 초선인데 이들 미녀에 빗대어 시어를 물속의 초선이라고 했을 정도다.
여기까지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니 역시 중국인들 과장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헌 기록을 보면 꼭 그렇게 생각할 것만도 아닌 듯싶다.
청나라 때 사전인 『강희자전』에는 시어를 방어와 비슷한 기름진 맛(似魴肥美)이라고 풀이했다. 또 청나라 때 미식가로 유명했던 원매가 저술한 『수원식단』에도 시어 요리가 실려있으니 청나라 귀족과 부자들이 앞다퉈 찾았던 명품 생선요리였던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었으니 시어는 명청시대에 황제에게 진상했던 별미 생선이었다. 그중에서도 양자강 지류인 강소성 양주의 진강(鎭江)에서 잡히는 시어를 으뜸으로 꼽아 이 시어를 자금성에 사는 황제에게 보냈다고 한다.
관련해서 청나라 초의 시인 오가기(吳嘉紀)가 『시어를 낚다(打鰣魚)』라는 시를 지어 황제에게 시어를 진상하기 위해 고생하는 민초들의 애환을 그렸다.
실제 백성들의 고생이 심하긴 심했던 모양이다. 시어가 잡히는 강소성 양주에서 북경까지는 직선거리가 1,300km로 3,000리가 훨씬 넘는다. 이 거리를 쉬지 않고 마차를 달려 이틀만에 도착했다고 한다. 시어를 산 채로 진상하기 위해 북경으로 올라가는 길목 15km마다 대형 수족관을 만들어 놓고 낮에는 기를 꽂고 밤에는 불을 피워 긴급 운송 마차임을 알리며 연인원 수천명이 밤낮을 쉬지 않고 날랐다. 이렇게 힘겹게 보냈지만 북경으로 가는 도중 십중팔구는 죽거나 신선도가 떨어져 황제가 먹을 수 있는 것은 1,000마리 중에서 불과 서너 마리에 불과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황제가 하사한 귀중하지만 맛이 간 시어를 놓고도 사람들은 열광했다. 삭아서 발효된 취두부처럼 삭은 맛이 난다며 냄새나는 생선이라는 뜻의 취어(臭魚)라는 이름을 지어놓고 좋아했다고 한다. 심지어 맛이 간 시어를 맛본 북경의 고위관리가 양자강 주변의 강남을 여행하며 진짜 싱싱한 시어를 먹어 보고는 "이게 무슨 시어냐"며 냄새나는 진짜 시어를 내놓으라고 우겼다는 소리도 전해진다.

그러면 옛날 중국인들이 이렇게 요란스럽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시어는 과연 어떤 생선일까? 양자강 하류에서 주로 잡힌다고 했고 봄철이 되면 잠깐 보였다가 사라진 후 이듬해 봄이 되어야 다시 나타난다고 했으니 일단 회유성 물고기였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면서 멸종돼 보이지 않고 덧붙여 지금은 일급 국가보호동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강소성 절강성에 가면 시어찜(淸蒸鰣魚)을 맛보라는 것이 뭔 소리냐 싶지만 지금의 시어는 중국 토종이 아니라 미국종이라고 한다.
그런데 시어는 진짜 어떤 물고기였을까? 우리 조상님들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전이 『자산어보』에 그 비밀을 밝혀놓았다. 정약전은 『유편(類編)』이라는 문헌을 인용해 시어를 준치의 일종으로 보았다. 실제 시어는 강과 바다를 오가는 회유성 물고기이지만 어쨌든 준치, 웅어 등과 같은 청어과 생선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으니 비슷한 시어 역시 맛있는 생선이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진나라 재상 장한이 벼슬마저 버리고 낙향해 먹었다는 송강 농어가 실은 한강 하류에서 많이 잡혔던 생선 '깍정이'였던 것처럼 준치와 비슷한 물고기라는 시어에서도 어딘가 대륙 뻥의 느낌이 없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