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국가를 생각한다

2025-05-13

제임스 C 스콧 예일대 정치학과 교수는 『농경의 배신』에서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정착한 다음 인류는 더욱 피폐해졌다고 한다. 흔히 수렵사회에서는 먹을 것을 찾지 못하면 며칠씩 굶을 수밖에 없지만 농경사회에서는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키워서 안정적으로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인류 문명이 진화했다고 이야기한다. 농경사회로 정착하면서 대규모 집단이 생기고 국가가 탄생했다. 국가는 집단을 효율적으로 규율하기 위해 세금을 징수하고 공동체를 관리한다. 스콧 교수는 이 과정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지배계급이 등장하고 이들로 인해 착취구조가 생기면서 인류의 삶은 더 궁핍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인류의 농경시대 삶이 결코 수렵시대 삶보다 나은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AI로 개인 자율성과 다양성 확대

과도 성장 국가시스템의 비효율

집권세력 국가권력 남용 막아야

AI 시대 국가시스템 재설계 필요

우리 삶을 지배하는 국가는 무엇인가? 국가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진정 도움을 주는가? 오늘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 붕괴 위기가 거론되고, AI로 인류의 삶과 사회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20세기 과대 성장한 국가 패러다임이 21세기에도 유효할 것인가?

20세기 초 인류는 생산 공정의 효율성으로 대량생산 제조업을 발전시켰다. 규모의 경제로 대기업이 경쟁력을 갖고 관리업무가 확대되어 관료제 조직이 크게 발전했다. 반면에 비효율적 노동력은 실업으로 내몰리고 보호무역주의로 대공황을 맞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케인스 경제이론이 동원되었고 과감한 재정정책으로 정부의 기능은 크게 강화되었다.

유럽은 복지 중심의 사회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국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정부기능을 확장했다. 그러면 과연 국가 살림을 책임 진 정치인과 관료들은 국가를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있는가?

AI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뉴노멀 시대의 국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AI 시대에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개별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서 세계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다양성이 발휘되고 개인의 자유는 크게 신장한다. 반면에 국가는 관료제화해 비효율성은 심화되고 국가 운영은 획일적 규제로 다양성을 훼손하고 전체주의적 특성을 강화한다. 게다가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세수가 늘어나 정부의 비효율적 재정지출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6공화국이 시작된 1988년에서 2024년 사이에 국내총생산은 9배 성장했다. 하지만 정부 예산은 39배로 늘어났고 국가부채는 63배나 늘었다. 2024년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예산은 25.7%에 해당한다. 대기업 근로자 평균 연봉은 1억이 넘지만 소비할 때 지불하는 부가가치세, 소득세, 그리고 건강보험료 등을 합하면 소득의 절반 가까이 국가가 가져간다. 정부의 예산이 늘어나면서 정부는 사적 영역에 해당하는 것까지도 보상금, 보조금 등의 형태로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1990년대 일본의 혁신적 정치지도자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는 일본개조계획을 주장하면서 책의 서문에 이런 글을 적었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을 방문했을 때 절벽 위에 젊은 남녀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저렇게 위험하게 절벽에 앉아 있다가 사고가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만일 일본이었다면 사고가 날 경우 국립공원 소장부터 관계자 모두 안전관리의 책임을 지게 되는데 미국에서는 이런 일은 당연히 개인 책임이기에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금융위기가 오게 되면 정부 보상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사람의 마음을 채굴한다는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작가가 쓴 『시대예보』 첫 권은 핵개인의 시대로 시작한다. 이제 핵가족을 넘어 핵개인의 시대가 되었다. AI가 우리의 삶에 깊이 내재화될수록 개인적 삶의 영역은 크게 확장된다. 국가나 집단의 간섭 없이도 다양한 삶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아직도 국가가 너무 많은 개인적 영역에 간섭하고 획일화된 정책으로 사회를 규율하려고 한다. 젊은 층에서 혼인신고를 꺼리는 이유는 결혼과 이혼은 사적인 영역인데 국가가 왜 이에 간섭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금 개헌 논의에서 제왕적 대통령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정치집단이 정권을 잡으면 막대한 재정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익집단화되는 것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집권하면 거대한 국가권력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쟁탈에 매진한다.

AI 시대를 맞아 더 이상 재정이 끊임없이 확대되면서 개인의 삶이나 기업 활동을 좌지우지하는 국가시스템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지 정치인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 작지만 스마트한 정부를 지향하는 새로운 국가시스템 설계만이 AI 시대에 선진국가로 가는 지름길이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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