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사법 쿠데타" 거센 반발…더 센 통상압박 카드 꺼내나

2025-05-29

미국 워싱턴 주재 한국 대사관을 비롯해 전 세계 대사관들은 그간 연방국제통상법원(CIT) 판결을 예의 주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앞세워 전방위 무역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법원이 헌법에 부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릴 경우 협상의 판도를 바꿀 ‘트리거’가 될 수 있어서다. 주요 대사관들은 올여름께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법원은 이례적으로 ‘약식 판결’ 형식을 빌어 속전속결로 결과를 내놓았다.

이번 결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내린 기본 관세(10%), 각국에 차등적으로 예고한 상호관세, 펜타닐 유입을 이유로 중국·멕시코·캐나다에 부과한 관세는 법원의 추가 판단이 나올 때까지 부과되지 않는다. 단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관세는 예외다. 일각에서는 위헌적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온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경제정책은 물론 외교안보 정책까지 추진 동력이 식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도 “관세는 내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며 무역뿐만 아니라 환율·안보 등 전 분야에서 사용했던 만큼 무기의 위력과 쓸모가 약해진 셈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조차 “법원이 미 행정부에 불리한 결정을 내리면 무역 협상 노력이 좌절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관세를 지렛대로 대미 투자 확대를 꾀하려던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됐다. “미국에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생산하면 고율 관세는 없다”며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종용했는데 이 같은 주장이 힘을 잃은 것이다. 각국과의 협상에서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고 시장을 개방하며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에 동참하라는 압박을 가했지만 이 역시 동력이 약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관세를 부과해 재정 적자를 충당하려던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고문은 지난달 “관세 세수가 향후 10년에 걸쳐 6조 달러(약 8294조 원), 자동차 관세를 더하면 7조 달러(약 9674조 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관세의 향배가 불투명해지면서 국제 질서 역시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對)중국 관세는 제네바협상으로 30%(보편관세 10%+펜타닐 관련 20%)였지만 이번 결정으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게 됐다. 제네바협상에서 미국은 중국의 시장 개방 등을 압박했는데 이를 요구할 지렛대도 약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유럽연합(EU)과의 관세 협상도 원점에서 시작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관세 부과의 근거가 사라진 만큼 EU와의 협상력이 크게 약해진 탓이다. EU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5%까지 늘리라고 요구할 수 있었던 압박 수단도 관세였는데 이 역시 쓸모없게 됐다는 분석이다.

다만 백악관이 이번 판결에 대해 “선출되지 않은 판사들이 국가비상사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행정적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예고한 만큼 트럼프 행정부의 향후 대응 수위와 범위에 따라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트럼프 행정부 측 인사들을 만나보니 이미 법원 판결에 대비해 플랜B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당장 트럼프 행정부는 1심 판결과 관련해 관세 부과의 효력을 이어가게 해달라는 보전 신청(stay)을 할 수 있고 이 경우 법원은 며칠 내에 심사를 해야 한다. 무역법 122조도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관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판결문은 “무역 적자에 대응해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은 1974년에 제정된 무역법 122조에 규정이 돼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대통령이 최대 15%의 관세를 150일 동안 부과할 수 있고 연장 여부는 의회에서 결정한다’는 조항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급한 대로 이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밖에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을 이유로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현재의 자동차·철강·알루미늄에 더해 반도체·의약품·목재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앞당겨 부과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무역상대국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문제 삼아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법 301조(슈퍼 301조)를 최대한 활용할 가능성도 높다.

여 연구원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주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 협상 체계를 정교하게 구축하고 상황에 따라 민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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