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조건’은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일하는 사람을 지킬 최소조건조차 없다면, 과거 노동자를 갈아넣던 ‘노동 정글 시대’와 다를 바 없다. ‘새벽배송 제한’ 논쟁은 이처럼 많은 질문을 품고 있다. 우리는 과연 자신의 의지로 노동 조건을 선택하는가. 삶이 하나의 출구뿐인 미로에 갇혀 있다면, 그 출구를 향한 조급한 걸음을 자유라 할 수는 없다. 노동의 역사는 인간의 삶을 그런 미로에 가두지 않으려는 투쟁의 역사였다.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
지난해 5월 숨진 쿠팡 새벽배송 기사 정슬기씨가 원청의 “달려주십쇼”라는 지시에 남긴 답 문자다. 고인은 숨지기 전 6일 동안 새벽배송을 하며 주 73시간 이상 일했다. 지난달 제주에서 숨진 오승용씨도 8일 연속 야간배송을 했다. 올 들어서만 쿠팡의 택배·물류센터 노동자 8명이 과로로 숨졌다.
세계보건기구는 2019~2020년 야간근무를 ‘발암 가능 요인’으로 분류하면서 노동시간대·반복성·교란 여부를 중요 요소로 평가했다. 이처럼 야간노동이 건강에 치명적임은 인간이면 직관적으로 안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수면·건강권을 위해 ‘0~5시 배송’을 제한하자는 택배노조 제안에 기업은 물론 소비자단체, 일부 택배기사들까지 반발했다. 소비자 권익을 무시하고, “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느냐”는 이유였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또한 자유의지라는 반발인데, 이를 선선히 수긍해도 될까. ‘편리’와 ‘필요’로 마음을 가리고 위험을 모른 체하는 건 아닌가.
노동 선택의 자유가 기만인 역사적 사례는 숱하다. 산업혁명기 도시로 이농한 노동자들은 법적 자유민이었으나 생계 때문에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리얼리즘 문학이 고발하듯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강제노동’이었다. 경제개발기 얼마나 많은 이 땅의 누이들 또한 ‘근면·저임금이 미덕’이란 위선 속에 야근과 잔업에 삶을 저당 잡혔는가.
이런 역사적 경험의 결과 한 사회의 지속을 위해 최저임금, 노동시간 규제 등 노동의 최소조건은 국가의 책무가 되었다. 지금은 택배기사, 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이 녹아내리는 것도 모른 채 ‘자기 착취’를 강요받는다. 성실한 만큼 더 큰 대가를 받는다는 ‘인센티브 임금’의 덫에 과로를 선택하지 않으면 게으르거나 무능한 게 된다.
쿠팡을 보며 내내 의문스러운 건 ‘혁신기업’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과거에 없던 야간노동 형태를 만든 게 정말 혁신일까. 그저 노동을 갈아넣는 방편이라면 과학기술을 나쁜 형태로 훔친 것에 불과하다. 자본의 탐욕에 맞서 권리를 지켜온 인류가 이번엔 ‘알고리즘’이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적을 만났다.
노동 조건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힘의 균형 속에서 결정돼야 한다. 기업과 시장은 효율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을 분해하고 최소조건조차 무화하려 한다. 일하는 사람들에겐 힘 모아 싸우는 것만이 무기였다. 국가는 ‘법’으로 최소한의 조건을 제도적으로 중재·보장한다. 그게 노동권 신장의 역사였다.
한 사회가 진전시켜온 인간 권리를 지킬 책무는 구성원 전체에게 있다. 그 맨 앞에 정치가 있음은 물론이다. 새벽배송 문제를 ‘표’가 아니라 인간과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지속 가능한 사회의 문도 열린다. ‘소비자도 자영업자도 각자 절실한 이유로 새벽배송을 선택한다’ 같은 논리는 죄책감을 덮으려는 이들에게 인기를 얻을 방편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은 파괴한다.
이 글의 목적은 부끄러움을 쓰는 것이다. 부끄러움이 더 많은 공감으로 퍼져나갔으면 한다. 쿠팡을 궁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이용하는 이들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오만하던 쿠팡도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로 벼랑에 몰렸다. 200만명의 이용자가 며칠 새 이탈하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권익이 침해당한 데 대한 정당한 응징이다. 그 정의로움이 새벽배송 제한에도 이어졌으면 싶다. 쿠팡이 15년 만에 연매출 40조원 기업으로 성장할 동안 노동자든 입점업체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경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기업이 소비자를 경시하는 것 또한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우리 삶이 왜 흔들리는지 아는가. 옆에 또 다른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확률 속에서 부르르 몸을 떠는 ‘양자 진동’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선택의 자유’라는 자본의 거짓을 방치할 때, 그 위선은 우리 자신의 위선이 된다. 새벽배송이 과연 이용할 만한 서비스인가, 누군가의 삶을 소모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한번 더 의심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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