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국기에도 등장하는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초 크메르 제국의 왕 수리야바르만 2세가 장인 3만여명을 동원해 30여년에 걸쳐 완성한 힌두 사원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1861년 프랑스 박물학자 앙리 무오가 밀림에 묻혀 있던 이곳을 유럽에 소개할 당시 동남아시아에선 불가능한 건축물이라며 믿지 않았다고 한다. 앙코르와트는 신화와 역사, 예술과 건축이 융합된 경이로운 공간으로, 수많은 예술가와 여행자들에게 영감을 제공한다. 캄보디아는 1975년 집권한 폴 포트의 크메르 루주 정권이 자국민 200만명을 학살해 집단 매장한 ‘킬링 필드’라는 오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유네스코는 지난 7월 반인륜 범죄의 기억을 보존하고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매장지들을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영광과 고통의 역사가 공존하는 캄보디아는 값싼 물가, 수려한 경관, 무엇보다 앙코르와트 유적으로 매력적인 나라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한국인을 표적으로 하는 범죄가 증가하며 그 명성을 잃고 있다. 한국인 피랍 신고 건수가 지난해 220건으로 급증했고, 올해엔 8월까지 330건에 달했다. 지난 8월엔 “캄보디아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출국한 뒤 연락이 끊긴 대학생이 고문으로 숨진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추석 연휴 직후엔 온라인 사기 조직에 고문을 당하며 감금됐던 한국인 2명이 극적으로 구조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피해자는 IT 관련 업무를 하면 월 최고 1500만원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구인 광고를 보고 캄보디아로 향했다고 한다. 한국인이 참여하는 박람회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활발히 진행된다는 점을 범죄 조직이 악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범죄가 빈발하는 건 코로나19 후유증으로 관광산업이 위축돼 경제가 침체됐고, 오랜 기간 독재와 부패로 치안력이 약화된 탓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캄보디아 범죄에서 국민 보호’에 총력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국민이 어디에 있건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건 국가의 책무다. 재외국민의 안전 대책은 한때 반짝하고 그칠 일이 아니다. 비상상황에 양국 정부가 긴밀히 협조하는 시스템 구축도 서둘러야 한다. 가뜩이나 전 세계적으로 외국인 혐오가 발호하는 시기인 만큼 더욱 그래야 한다.
